참교육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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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1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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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교육적 실천
박을석<전교조 충북지부>



언젠가 이 칼럼란에 '요즘 선비란 것들은 물 뿌리고 청소할 줄도 모르면서 매양 입만 열면 도리를 말하고 의를 논한다'는 남명 조식 선생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청소는 실천궁행의 첫 걸음이었던 것일까 하필이면 남명 선생은 청소를 이야기했던 것일까

불경에 청소의 다섯 가지 공덕을 논한 대목을 발견하고는 "별스런 내용도 다 나오는군!" 하고 혼잣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그 공덕을 다 외우지는 못하나, '스스로 기분이 상쾌해 진다, 남을 기쁘게 한다' 등등의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최근 제주도에서 들려온 청소와 관련한 소식이 한참 동안 청소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 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의 큰 어른이시고, 한 사립대학의 정상화에 이바지하셨고, 인품과 덕망이 높아서 제주의 국립대학에 총장으로 초빙돼 가셨던 분에 대한 소식이었다.

학교 도서관 근처에 있던 쓰레기를 학생들에게 치우라고 했으나 주우려 들지 않고 '우리가 그러지 않았다'고 회피하는 자세에 격분해 욕설을 하고 들고 있던 알루미늄 막대로 때렸다는 것이 사건의 요지다.

한 평생 공적과 덕망을 쌓는다 해도 한 가지 실수로 그러한 명성을 잃는 일이 인생사에 부지기수다. 처음에 기사를 읽을 때 훌륭하신 분이 큰 실수를 하셨구나 싶었다. 소식을 전하는 기사도 교대 총장이라는 이의 욕설과 구타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터였다. 확실히 그 기사는 선정적인면이 있었다. '총장 ×× 발언 논란 증폭, 학내 대자보, 학생 사과촉구'라는 제목도 그러했다.

그러나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다시 그 기사를 읽게 되자, 그 대학 학생들의 행동과 자세에 시선이 미쳤다. 학교에 있다 보니 복도나 운동장에 쓰레기가 있으면 종종 허리를 굽혀 줍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좀처럼 시키지 않으면 발로 걷어차고 다니며 줍지 않는다. 대학생이라는 성인이, 그것도 장차 선생님이 되겠다는 사람이, 시키기 전에 주울 수는 없었을까 총장이 나서 치우라고 하는 데도 간단히 그 말을 무시해야 했을까 단지 '내가 버리지 않았다'고 대응해야만 했을까 스승의 분노 앞에서 자신의 '인권모독'이라며 맞서야만 했을까 소규모든 대규모든 사람 사는 공간에는 먼지가 쌓이고 물건이 어질러 지고 쓰레기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청소는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일이다. 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청소부에게 다 맡기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청소하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가 학교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학생이든 어른이든 청소는 왜 필요하고 쓰레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실천은 어떡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면 참담하기조차 하다. 나 자신이 그 현장에 있었다면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학교에서 떨어진 우윳곽을 툭툭 차고 다니는 걸 보고 "좀 주워!" 호통치며 등짝을 때린 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또한 '사람을 만든다'는 교사로서 스스로 뉘우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머리만 기르고 가슴을 기르지 못한 잘못, 입만 살리고 몸을 다듬지 못한 죄를 반성할 일이다. 스스로의 내면에서 우러나 자신과 공동체를 위하여 힘든 일, 귀찮은 일을 하도록 학생을 가르치지 못한 자신을 탓할 일이다. 다시 그러나, 어찌 이 모든 일이 그저 교사의 탓이기만 할까 사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할 것인가 우리 사회의 교육적 실천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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