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의 문학 칼럼
이석우의 문학 칼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1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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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뒤에 서 있는 시인
어느 세미나에서 "절망 뒤에 남아 있는 그 무엇"이 도종환 시의 특징이라고 하였다가 오해를 받은 일이 있었다. 아마 내 발표가 도종환 시에서는 절망의 메시지만 있을 뿐 희망을 읽어 낼 수가 없다고 본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다 도종환 시의 절망론은 절망 뒤뜰에 남아 있는 티끌 같은 희망에 대한 담론이다. 그는 능숙하게 절망 뒤에 혹은 그 내부에 희망을 묻어둔다. 그의 시가 심오함은 꽃잎이 떨어지고 난 후에도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그 무엇 때문이다. 그것이 그가 진정 절망하고자 하는 얼굴인지도 모른다.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도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 폐허이후 도종환 



그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나무'이기를 갈망하고 있다. 저를 버리지 않고, 화산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는 것이다.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폐허의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는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항상 소외된 것들, 버려지고 있는 것들을 함께 바라보고자 한다. 몫을 다한 것들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여린 풀꽃 같이 웃고 있을 때 그의 내부는 오히려 엄숙해진다. 엄숙주의는 그 삶의 바탕이다. 그러나 그는 정착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가 낮게 하여 사는 일의 아픔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는 이미 어딘가로 떠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는 절망 뒤에 서게 되면 자신을 즐겨 빈 밭으로 그냥 놓아둔다. 그는 절망과 폐허 그 다음에도 있어야할 당위적인 것들이 그 자신인양, 눈이 펄펄 내리는데 수확을 포기한 무처럼 빈 밭에 자신을 세워둔다. 그는 지금 무극의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마 태극은 절망의 세계일 것이다. 그 절망의 끝을 매만지는 일이 태극의 사람들과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절망 뒤에는 늘 절망이 서 있다. 그를 쓰러뜨린 맨 마지막의 절망 뒤에 무너져 주저앉아 있는, 영혼이 막 떠나고 난 뒤의 모습은 무극일 것이다.

그는 낮은 언덕을 정신의 붓으로 높게 하기 위해 절망 뒤에 서 있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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