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총량으로
환상의 총량으로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1.01.2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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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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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훅 들어온 친구가 있다. 하지만 엄마의 반대로 그 친구를 만날 수 없다면 어린 당신은 어쩌겠는가, 그리고 나는. 어릴 적 내 성향으로는 반대하는 엄마에게 바락바락 대들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1998년 프랑스에서 어린이 책에 주는 최고의 상 `토템 상'을 받은 `푸른 개'의 이야기다. 떠돌이 푸른색 개와 작은 여자아이와의 우정과 성장에 관한 책이다. 그림책 작가 `나자'는 어느 시골 마을에서 실제로 래브래도 리트리버 한 마리를 만나면서 책 구상을 했다고 한다.

어린 소녀 샤를로뜨는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난 푸른 개와 초코빵을 나눠 먹으며 친구가 된다. 외동딸이던 샤를로뜨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은 기쁠 만도 할 텐데 “엄마는 네가 그 개와 노는 게 싫다. 누구네 개인지도 알 수 없고, 병에 걸렸을지도 몰라. 물리면 큰일이야.” 샤를로뜨는 푸른 개는 물지도 더럽지도 않다고 말하지만 “어쨌든 엄마는 그 개를 우리 집에 들여놓지 말았으면 좋겠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전지적 엄마의 시점에서 푸른 개는 위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실제 그림을 보면 푸른 개는 샤를로뜨보다 크고, 초록빛 눈동자에 눈부신 푸른 털은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엄마의 관점에서는 이런 점,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던 것일 수도 있다. 더구나 자신이 정해놓은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자녀는 용납이 안 된다.

샤를로뜨에게 노골적으로 푸른 개와 어울리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엄마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엄마의 억압된 권위가 드러나는 대목은 샤를로뜨를 목욕시키는 장면에서다. 잠자기 전 가장 충만한 시간으로 채워져야 할 목욕시간에 엄마는 아이를 압도하는 검은색 복장으로 나타나(검정색 구두까지 신고 있다.)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엄마의 모습이 아니다. “안돼, 엄마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라고 못 박는다. 알몸으로 엄마의 손에 의지하며 목욕 중인 어린 샤를로뜨는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다. 그림을 보며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어린 샤를로드의 눈물과 체념한듯한 표정이다.

그 후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어느 날, 가족이 숲 속으로 소풍을 간다. 산딸기를 따러 부모와 떨어진 샤를로뜨는 길을 잃게 되고 푸른 개가 나타나 밤새 곁을 지켜준다. 샤를로뜨가 잠든 사이 어둠의 정령 검은 표범과도 싸워 이긴다. 다음 날, 푸른 개 등에 타고 집으로 돌아온 샤를로뜨를 본 엄마는 “내가 이런 개를 못 키우게 하다니!”라며 푸른 개를 인정하기에 이른다.

일반적인 그림책에서 보기 힘든 회화성 짙은 그림이 독특하다. 또한, 단순하고 짙은 색감에서 강렬한 감정들이 그대로 보이는 인상적인 책이다. 길 잃은 어린 소녀의 밤을 보호해주고, 어둠의 정령 검은 표범을 물리치고, 영원히 곁을 지켜주는 푸른 개는 `우리가 유년기 내내 빠져 있던 환상의 총량'이라고 프로이트가 말한다. 인생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힘겨움 속에 내 안에 내재 되어 있는 모든 즐거운 힘의 총량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어쩌면 푸른 개의 등장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함께 난관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위로와 응원 같은 것이다. 우리 모두 샤를로뜨와 같은 성장기를 거쳐 여기 이렇게 서 있다.

누구나 자란다. 성숙에는 아픔이 따른다. 내적인 힘이 길러진 어린 소녀는 이제 검은 표범과도 같은 엄마의 압박에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자기 확신에 좀 더 가까이 갈 것이다. 올해는 나의 푸른 개를 깨워 뭐라도 해보고 싶은 열망이 움트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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