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으로 ‘석’으로 남아 있는 시인
‘기행’으로 ‘석’으로 남아 있는 시인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1.01.2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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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그를 수식하는 문장이 있다. `시인 중의 시인',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등이 있다.

그래서일까?

<시인들이 좋아하는 애송 명시/한국시인협회/2008>에 그의 시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법정스님, 길상사, 자야, 란, 통영, 월북시인 등은 그의 삶의 파편들로 세간에 회자 되고 있는 단어들이다.

그렇다. 때로는 기행으로, 때로는 석으로 불렸던 시인 백석 얘기다. 일제 치하였던 그 당시, 4개 국어가 능통했던 수재였고 한반도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 시인으로 입지를 굳혔던 시인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집이 있는 고향으로 간 시인으로 봐야 할지, 이념을 찾아 북으로 간 월북시인으로 봐야 할지는 논의가 필요한 단어 일 듯하다. 재북이든 월북이든 그의 시들이 1987년 해금되기 전까지 출판금지였긴 매 한가지일 터지만.

시인 백석에 대한 작가들의 사랑과 존경은 세기가 바뀐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 2020년에 발행된 작품 중 `소설가가 좋아하는 소설가/교보문고'2위에 선정 된 김연수 작가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도 백석에 대한 이야기다.

북한의 당에 대한 찬양과 방언 억제 정책도 순수문학에 대한 지향과 지방 토속어로 한국적 전통을 탐구하려는 시인에게 `쓰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내기에 참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시인은 숙청 대상이 되어 오지 중의 오지인 함경남도 삼수 지방에서 양치기를 하게 된다.

쓰고 싶으나 쓰는 것이 자유롭지 않은 그곳에서, 다시 창작활동을 하는 시인으로 살기 시작한 해인 1956년부터 펜을 빼앗기며 강제 절필하게 되는 1962년까지의 `일곱 해!'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시작점에 쓴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가 있다. `아이들이 생활속에서 이해 할 수 있는 글감과 정서를 시적으로 형상화 해'야 한다던, `웃음 속에서 지혜와 민족에 대한 긍지를 알게 해'야 한다던 시인의 지론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동화시집이다.

그 중 `준치가시'를 필두로 시인의 동화시는 그림이 더해져 남녀노소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썩어도 준치!'란 속담에서 보여 주듯 준치는 맛있고 귀했던 생선이다. 아무리 그래도 가시가 많이 있는 것은 먹기에 성가시긴 하다. 가시 발라내느라 먹는 것에 흐름이 끊기니 시인은 혹은 지인들은 가시가 많은 것에 투정을 부렸을 터, 시인은 이야기에 익살을 보태고 운율을 얹어 재미진 동화시를 창작 해 냈다.

옛날엔 가시가 없던 준치, 가시가 부러운 준치는 가시가 많은 물고기들에게 호기롭게 다가간다. 가시 좀 하나씩만 꽂아 달라고. 가시가 많아진 준치는 기쁜 마음으로 떠나려 한다. 그러나 고기들에게는 더 주려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고 준치에게는 사양할 줄 아는 염치가 있다. 일 대 다수의 대치 상황! 의기양양하던 준치의 난감한 표정이 그려져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대목이다. 그리하여 준치는 특히 꼬리에 가시가 많아졌단다. 그러니 준치를 먹을 때엔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깃든 가시를 나물지(나무라지) 말라고 독자들에게 살며시 권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만사가 있다. 각자가 세운 뜻대로 이루기도 하지만 의도한 대로 `딱 그만큼'에 못 미치기도, 더 나아가기도 한다. 설령 그렇더라도 꿈을 꾸고 행하는 마당마다에서 해학과 익살이 곁들여지는 여유를 준치가시에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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