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과 흰 소
이중섭과 흰 소
  • 강석범 진천 이월중 교감
  • 승인 2021.01.2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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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진천 이월중 교감
강석범 진천 이월중 교감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미술 시간에 운동장 스탠드에 줄 맞춰 앉아 야외풍경화로 학교 앞산을 그렸습니다.

빡빡머리 중학생들은 그림 그리기보다는 야외에서의 소곤거림에 더 열중했던 때였습니다. 파스텔 그리기였는데, 아이들은 `산'은 쳐다보지도 않고 온통 삼각뿔의 녹색으로 산을 그려댔습니다.

갑자기 운동장 너머 먼 산이 내 눈에 보랏빛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앞산은 녹색, 뒷산은 보라색으로 문질러 표현했는데, 친구들은 내 그림을 보고 웃었습니다. “산이 왜 보라색이냐?” 킬 킬….수업이 거의 끝날 때쯤 순회 지도를 하던 선생님께서 내 그림을 앞으로 가져가 “주목~ 이 그림 봐라~ 산은 거리에 따라 이렇게 색이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아주 멋진 그림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학생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미술선생님은 나의 우상이 되었겠지요.

미술선생님은 실기 지도 외에도 우리에게 미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수업시간 끝나기 10분 정도씩, 고흐나 세잔, 피카소 이야기도 해주시고, 우리나라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특히 이중섭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드라마처럼 흥미롭게 해주셨는데, 지금 현재 이중섭에 대한 나의 지식은 그때의 기억이 가장 많습니다.

이중섭은 어렸을 때부터 소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그림 그릴 때는 하루 종일 소만 바라봤다고 합니다. 당시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이중섭은 소를 관찰하다가 주인에게 소도둑으로 몰려 부리나케 도망가야 했던 경험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아는 것처럼 이중섭의 대표 작품은 `흰 소'입니다. 마침 올해가 소의 해 신축년(辛丑年)이기도 하고, 신축년의 신(辛)이 백색을 의미해 올해를 `하얀 소의 해'라고도 부릅니다. 이중섭 작가도 유달리 흰 소를 많이 그렸는데 백의민족이었던 우리 민족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 등을 겪으며 힘든 당시의 상황을 뼈대가 앙상한, 그러나 힘이 넘치는 강골의 소 그림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중섭 특유의 조형언어로 표현한 작품들입니다.

2018년 3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이중섭(1916~1956)의 `소'는 3분 만에 47억이라는 경매 신화를 썼습니다.

47억짜리 소가 된 건 작품성도 있지만 이중섭 소 그림의 희소성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습니다. 거칠고 격동적인 붓질이 압권인 이중섭의 `소'그림은 현재 9점 남아 있는데 이 중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경매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작품은 극소수라고 합니다.

47억 황소 이후 탄력을 받은 `이중섭의 소'는 `싸우는 소'가 그해 5월 9억 원에 나와 14억5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은박지 화가로도 유명한 이중섭은 소 작품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예술세계를 한국적 미학으로 승화시켰다고 평가받습니다. 우리 민족 수난의 역사와 가난의 역사가 함축되어 있고. 해부학적 이해와 엄밀한 데생 실력이 돋보이는 이중섭의 `소'는 고통·절망·분노, 희망과 의지, 그리고 힘의 상징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코로나19로 온 지구촌이 우울한 2021년 하얀 소의 해 신축년! 이중섭의 강건한 흰 소 작품처럼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힘의 신축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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