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주 한 동이
모주 한 동이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1.01.1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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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겨울이 되면 몸이 추운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마음까지 추워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 사항일 뿐, 현실은 몸과 마음이 함께 추운 경우가 허다하다.

마음이 추운 것은 결코 날씨 탓이 아니다. 예상한 대로 외로움이 그 주범이다. 가족과 친구로부터 떨어져 사는 삶은 더운 여름이라도 춥게 느껴질 터인데, 추운 겨울에는 말할 것도 없이 추울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유희춘(柳希春)은 겨울의 마음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모주 한 동이를 집에 보내며(以母酒一盆送于家)

雪下風增冷(설하풍증랭) 눈 내리고 바람 불어 냉기를 더하는데
思君坐冷房(사군좌냉방) 그대 걱정하며 찬 방에 앉았네
此醪雖品下(차료수품하) 이 탁주가 비록 품등이 낮지만
亦足煖寒腸(역족난한장) 그래도 차가운 속 데우기엔 족하리

시인은 추운 겨울에 가족들과 떨어져 객지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시인의 거처에는 때마침 눈이 내리고 바람까지 불어 찬 기운이 부쩍 심해졌다.

몸은 춥고 마음은 외로운 시인의 처지가 잘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을 걱정하는 대신 가족을 걱정한다. 자신이 있는 곳이 추우니, 가족이 있는 곳도 추우리라고 짐작하여 그를 걱정한 것이다. 가족에 대한 애틋하고 따뜻한 정이 글에 배어난다.

추위에 떨고 있을 가족을 걱정하며, 시인 또한 찬 방에 앉아 홀로 따뜻하게 있는 것을 피하고 있다. 추위마저도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함이다.

시인의 머릿속은 멀리서나마 가족을 따뜻하게 해 줄 방도를 찾는 것으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자신이 마시던 탁주를 집에 보내는 것이다.

비록 품등이 높은 고급 술은 아니지만, 차가운 속을 덥게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술이 속을 덥히는 것이야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여기서 가족의 차가운 속을 덥혀 준 것은 술도 술이지만, 시인의 따뜻한 마음 아니었을까?

겨울 추위는 자연현상이므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차가운 방이야 온갖 난방 수단을 동원하여 덥힐 수 있다 하여도, 외로운 마음은 달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가족애이다.

혼자서 떨어져 사는 외로운 처지에 있을 때 자신을 달래는 최상의 방법이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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