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무심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14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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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 뒤에서
심 억 수 <시인>

산이 좋아서 주말이나 휴일이면 즐겨 산을 찾는다. 산에 가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먼저 오르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다. 나는 사람들과 부대끼기가 싫어 한걸음 뒤떨어져서 간다. 마음으로 통하는 지기들과 어울려 산행을 하다 보면 심신의 피로도 말끔히 풀린다.

어느 산악인은 '산이 있으니 오른다'고 하였지만, 나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산행을 한다. 산을 오르면서 느끼는 바람소리와 졸졸 흘러가는 계곡물은 나의 삶의 활력소로 다가와 마음이 행복해진다.

어느 산이든 조그만 암자나 절이 있게 마련이다. 그 곳에서는 '산행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아내의 음성 같은 은은한 풍경소리가 들려 마음이 평온해진다. 대웅전에 들러 늘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님의 건강과 자식들의 미래를 염원하는 삼배를 드릴 수 있어 좋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산행이야말로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 나이를 먹는 것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산행을 하면서 바라보는 초록의 향연은 내 유년시절 간직했던 꿈과 희망이리라.

밀려드는 권태와 무력감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허둥대며 보냈던 시간과 힘겨웠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으려 잠시 심호흡을 해본다. 초록의 향기를 가슴속 깊이 들여 마시니 산 능성의 초록물결은 어느새 내마음 가득 바다가 되어 잔잔한 파도를 대신한다. 부서지고, 쏟아지고, 밀려오고, 또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초록햇살은 내가 기억하기 싫은 지난날의 삶을 정화시키고 있다.

산을 오르면서 바라보는 오묘한 풍경과 생각의 편린들이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며 정신을 맑게 해준다. 물소리 새 소리를 들으며 산을 오르다 보면 산그늘과 계곡이 어우러진 곳에 거대한 물기둥이 떨어지는 장관을 가끔 만날 수 있다.

이끼 낀 바위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신비감을 더해 준다. 폭포들이 토해내는 물소리가 경쾌하다. 땀에 젖은 나를 닦아주는 바람이 온몸을 옭아매었던 일상의 삶의 찌꺼기들을 떨쳐내는 것처럼 시원하게 느껴진다.

산행을 하다 보면 아름답게 피어난 꽃, 만산을 붉게 수놓은 단풍을 만나는가 하면, 뜻하지 않게 소나기가 내리거나 눈보라를 만날 때도 있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와 같으리라. 어쩌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오르지 못할 때에는 이제껏 살아온 내 인생의 목표를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내 뜻대로 살 수만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으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가끔은 별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별것도 아닌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려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으며 살아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사람은 늘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말씀을 떠 올리며 한걸음 뒤에서 산행을 하듯 세상을 살아가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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