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특별한 보통의 해를 꿈꾸다
새해, 특별한 보통의 해를 꿈꾸다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1.01.13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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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새해 첫날이었다. 베란다 창 너머 먼 산 위로 태양이 솟아오르며 붉은빛을 발하는 통에 눈을 떴다. 그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집 근처 수정산 정상에 올라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보리라 마음먹었건만 다 글러 버렸다. 해는 어느새 중천에 떠올라 나의 게으름을 힐책하기라도 하듯 창틈을 비집고 연신 빛을 쏘아댔다.

이왕 늦은 거 조금 더 게으름을 피워보리라 싶었다. 늘 그러하듯 항상 머리맡에 두고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손을 뻗어 열게 되는 휴대폰을 눌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휴대폰이 먹통이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밤 늦게까지 아무 이상 없었는데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리저리 휴대폰과 텔레비전 리모콘을 양손에 쥐고 한참 씨름을 했다. 허사였다.

결국 통신사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전역에 기지오류가 발생해서 한 시간째 긴급 수리를 하고 있는데 죄송하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이미 이런 전화가 한두 건이 아니라는 듯 목소리에는 피로감이 역력했다.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였으나 새해 첫날부터 수많은 민원에 시달렸을 것을 생각하니 직장인의 공통분모가 만들어 낸 역지사지의 심정이 떠올라 더는 말하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분신과도 같은 휴대폰의 복귀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故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 라는 문학 에세이였다. 아주 오래전에 읽고 책장에 꽂아 두었는데 몇 번 이사 다니며 잃어버려 아쉬움이 컸던 책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63쇄가 발행되어 기념으로 사 둔 책이었다. 이참에 옛날 기억을 되살리며 읽어보리라. 처음엔 그리 한 페이지를 넘겼다가 아침도 거른 채 한나절 책과 눈을 맞춘 새해 첫날이었다.

가장 눈이 갔던 대목은 아마도 책 중반쯤에 나오는 「`특별한'보통의 해」 이지 싶다. 새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별로 `특별'하지 않은 가장 보통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부분이다. 무슨 특별하게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대단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누구나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고, 상식에서 벗어나는 기괴한 일이 없고, 별로 특별할 것도, 잘난 것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 서로 함께 조금씩 부족함을 채워 주는 세상을 그녀는 소망했다.

나 역시 새해를 맞이해 올해는 그야말로 가장 보통의 해가 되길 바란다. 봄이 오면 으레 학교는 개학을 하고 입학식을 치르고 교정 가득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를 희망한다. 지난해부터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던 마스크로부터 해방이 되고 사회적 거리가 사라져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밥을 먹고 즐거운 이야기로 반가운 모두의 평범한 하루하루가 되기를 나는 소망한다.

어쩌다 휴대폰이 아닌 책으로 새해 아침을 열게 되니 온종일 좋다. 남은 364일이 선물처럼 좋은 일들로 채워질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어떤 뿌듯함이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휴대폰과도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겠다는 다짐 하나를 또 한다. 잠시라도 틈이 생기면 휴대폰을 찾고, 열고 확인해야만 하는 무의식적 습관으로부터 올해는 반드시 벗어나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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