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본질, 다시 사람을 위하여
관계와 본질, 다시 사람을 위하여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1.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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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새들도 떠나고/ 그대가 한 그루/ 헐벗은 나무로 흔들리고 있을 때/ 나도 헐벗은 한 그루 나무로 그대 곁에 서겠다./ 아무도 이 눈보라 멈출 수 없고/ 나 또한 그대가 될 수 없어/ 대신 앓아줄 수 없는 지금/ 어쩌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눈보라를 그대와 나누어 맞는 일뿐/ 그러나 그것마저 그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보라 그대로 하여/ 그대 쪽으로 불어오는 눈보라를 내가 견딘다./ 그리하여 언 땅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뿌리를 얽어 쥐고 체온을 나누며/ 끝끝내 하늘을 우러러/ 새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보라 어느샌가/ 수많은 그대와 또 수많은 나를/ 사람들은 숲이라 부른다. <복효근. 겨울 숲>

새해가 밝았음에도 유독 2021년의 시작이 각별하지 않은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합니다.

혹독한 기세를 멈추지 않는 코로나19가 당장의 가장 큰 이유겠지요. 지구상에 남아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스스로를 차단하고 격리하며,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 하는 생존의 간절함이 지난해와 똑같이 거듭된다는 것. 그리고 이 지겨운 멀리 있음의 날들이 도대체 언제 끝날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우리에게 새해를 맞는 희망찬 꿈마저도 앗아가 버린 것은 아닌지 불안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첫 <수요단상>을 통해 독자제위께 인사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충청타임즈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손 글씨로 베껴 써서 사흘의 연휴기간 내내 책상머리에 붙여 놓고 읽고 또 읽었던 복효근 시인의 <겨울 숲)은 새해 덕담 대신 제격입니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헐벗은 나무로 흔들리고'있는 것은 비단 코로나19 감염병에 대한 걱정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도 매일 7명의 귀중한 생명이 일하다 죽어 사람 사는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비극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기업의 이윤이 사람의 목숨보다 훨씬 중요한 성장과 개발의 낡은 자본의 시대를 뼈저리게 반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 세상은 온통 아비규환인데, 법치주의로 무장한 법률의 권력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구하려는 노력 대신 모질게 저항하며 오로지 자신들의 집단만을 보호하기 위한 욕망의 끝 또한 끝내지 못하고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이토록 지긋지긋하게 물러나지 않고 있는 까닭이 절제되지 못한 자본적 탐욕과 자연을 함부로 침범하는 (인간의)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근본적 원인을 세밑에 새삼 강조하지 않겠다.”고 쓴 2020년 마지막 <수요단상.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을 다시 고쳐 쓰며 2021년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모든 `본질'과 `관계'는 양심입니다. 인간은 그동안 `관계'를 함부로 하면서 `본질'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제 자리로 돌아가는 일>은 그저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의 귀환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본질'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윗사람을 배신하여 등 뒤에 비수를 꽂고 자기편만 감싸는 권력집단을 방치하면서 건강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법률 권력을 필두로 대부분의 엘리트 집단에 의해 자행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요한 능력주의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코로나19시대의 불평등과 위기 극복을 위한 연대의식 또는 연대책임의 둑을 무너뜨리는 `본질'의 파괴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2021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말 몇몇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서 코로나19를 물리칠 수 있다고 흥분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백신'으로 정복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인간의 몸에 바이러스가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겨 소멸하게 하는 집단면역의 주술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몸을 빚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집단면역(herd immunity)의 원리이고, 집단접종이 개인접종보다 훨씬 효과적인 것은 바로 이 집단면역 덕분이다. 어떤 백신이라도 특정 개인에게서는 면역을 형성하는데 실패할 수 있다.”

저널리스트 율라 비스의 말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모든 질병 해방의 `본질'임을 말합니다.

다시 사람입니다. `수많은 그대와 또 수많은 나', 우리 모두가 사람의 `숲'에서 살아가야 하는 새해는 그래도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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