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과 교훈
불행과 교훈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1.01.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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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하필 4차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의 가장 야만적인 형태인 신자유주의 체제와 극단의 불평등, 간헐적 팬데믹, 기후위기, 인류세/자본세의 조건에서 수행되고 있다. 과학기술을 자본의 탐욕으로부터 독립시키지 않는다면, 패러다임과 사회체제의 대전환이 없으면, 그 끝은 인류 멸망이나 디스토피아다. (…)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오르고 부자가 되더라도 건강이 상하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듯, 과학혁명, 산업발전, 경제적 풍요를 이루더라도 거기 인간과 생명이 없다면 인류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 이도흠)

전국의 요양시설과 병원에서 집단감염과 추가전파가 이어지자 코호트 격리 방식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코호트는 원래 특정한 행동양식을 공유하는 집단을 의미하는 독일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동일한 시기에 탄생하여 역사적 경험과 세대별 문화 특성을 공유한 세대를 일컫는 사회학 개념이기도 하다.

의학에서의 코호트는 특정 공간에 있는 특정 질병 감염자나 감염증 발생 환자와 의료진을 의미하며 이들을 외부와 물리적으로 격리하여 전염병의 전파 가능성을 예방하는 조치를 코호트 격리라고 한다.

병원이나 병동에 코호트 격리가 내려지면 환자와 의료진은 바이러스 잠복기가 지날 때까지 해당 병원이나 병동 밖으로 이동이 금지된다.

침이나 콧물 등으로 전파되는 비말감염의 경우 가구나 문 손잡이 등을 통해 병이 전염될 수 있어 물품의 이동 등도 엄격하게 관리된다.

14세기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하자 당시 이탈리아의 라구사 항구에서는 페스트 유행 지역에서 출발한 모든 선박의 입항을 한 달 동안 금지하고 인근 섬에 닻을 내리게 한 후 선원과 승객의 왕래를 봉쇄하는 선상 격리를 시행했다.

이 기간이 여러 감염병에 대응하며 40일까지 늘었는데 검역을 뜻하는 영어 `quarantine'의 어원은 이탈리아어의 40일을 뜻하는 `quaranta giorni'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12월 한 달간 코호트 격리된 요양병원 14곳에서 996명이 감염되고 99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 피해가 커지자 정부가 동일집단 격리 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

확진자와 비확진자를 분리해 교차 감염을 차단하는 것이 핵심인데 요양병원에 대한 손실보상과 지원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전 예방 조치도 강화할 계획이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를 거쳐 코로나를 겪으며 백신과 치료제, 사회적 거리두기와 코호트 격리 등 발등의 불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미래까지 저당잡혀 쌓아 올린 성적표 - 전염병의 창궐과 기후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경제 시스템과 사회작동원리에 대한 반성, 그리고 대안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록적인 한파 속에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올겨울,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나오는 아래 문장이 칼바람처럼 정수리를 파고든다.

`기쁨에 젖어 있는 군중은 모르고 있지만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수십 년 동안 가구나 내복에 잠복해 있고,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낡은 서류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쥐들을 다시 깨우고, 그 쥐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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