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1.01.1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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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휴양림으로 오르는 구불구불한 산길로 접어든다.

산기슭 외딴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지붕을 타고 흩어진다. 난로 위에 올려놓은 물주전자 뚜껑은 달그락거리고, 구이 틀에는 군고구마가 익어가지 않을까. 군고구마 냄새와 함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거실 풍경을 상상해 본다.

지난여름에는 이 길을 따라 연일 노란색 어린이집 차가 휴양림을 찾아왔다.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한결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비록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시멘트 건물을 벗어나 숲에 안겼으니 갑갑하던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 아니었을까.

숲 속에는 놀잇감이 풍부하다. 특히 자연물을 이용한 집짓기는 숲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귀한 놀이다. 주변의 나뭇가지를 주워 모아 서로 받치고 세우면서 삼각형 원뿔 모양의 인디언 나무집을 완성해가는 놀이다.

서둘러서도 안 되고 균형이 안 맞아도 넘어진다. 쓰러지고 또 쓰러지길 여러 차례, 마침내 아이들은 협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디언 나무집이 완성되면 돌멩이와 모래로 식탁도 근사하게 꾸민다. 널려 있는 재료로 정원을 만들어 크고 작은 나무도 심는다. 어떤 아이는 나뭇가지에 알록달록한 낙엽을 꽂아 물고기를 잡았다고 외친다. 또 다른 아이는 백합나무 잎사귀에 구멍을 뚫어 가면을 만들어 썼다. 멋진 나뭇잎 왕관이다. 이처럼 아이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은 언제나 빛났다. 이렇게 신나게 놀던 숲 수업이 코로나 확진자 증가로 또다시 중단되었다. 새해가 밝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은 여전하다. 유아 숲 지도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의 기다림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기약이 없다.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나의 손녀는 아침 9시가 되면 EBS 교육 방송을 통해 학교 수업을 받는다. 교과목을 바꿔가며 출석 체크를 하고 화면 앞을 못 떠나는 모습이 짠하다. 집안에서 종일 지내는 아이들을 보며 우거진 숲으로 데려가 맑은 공기를 맘껏 마시며 뛰어놀게 해주고 싶었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전염병은 급속도로 확산하고 5인 이상의 만남도 규제하고 있다. 밖에서 보내던 시간이 고스란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의 답답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점차 차분해진다. 집 안 구석구석 손길이 닿고, 미뤄둔 일을 하나씩 처리하는 지혜가 생긴다. 멀리 있는 가족들과 뜸했던 안부를 묻고 소중함을 확인한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자발적인 자가 격리를 하면서 나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연대감을 회복하는 중이다.

숲 교육은 내년을 기약하며 지난 12월 초에 마무리 지었다. 오가며 만났던 왕벚나무를 올려 본다. 수많은 옹이와 갈라진 상처를 안고 서 있다. 갑자기 닥친 전염병으로 아픈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저렇게 깊은 상처가 생겼겠지.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이 나목 사이로 걸림 없이 지나간다. 겨울나무 가지마다 겨울눈이 봉긋하다. 여러 겹의 비늘잎이 솜털 옷을 입은 꽃눈을 야무지게 감쌌다. 칼바람 속의 자식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내년 봄을 준비하고 있다.

나뭇가지 위의 새들은 여전히 노래하고 있다. 나무가 겨울눈을 보호하듯 우리도 서로를 보듬고 바이러스라는 처음 겪는 강추위를 이겨내야 한다.

새봄에는 이곳 백야의 골짜기에 새소리보다 더 큰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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