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만드는 결핍
영웅을 만드는 결핍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1.01.1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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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연말과 새해가 들어있는 겨울이 되면 뭔가 모르게 산만하고 들뜨는 마음이다. 할 수 있는 것들을 골라 꼼꼼히 계획을 세우다가 그만둔 것은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라는 진리를 깨닫고 나서다. 이건 내가 나를 잘 모를 때의 이야기다. 그러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엉뚱하게도 우주가 만들어지던 시점을 생각한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신화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나의 혼 책(혼자 책 놀이) 생활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하며 시간을 보낸다. 연초엔 이런 영웅의 이야기에 흠뻑 젖고 기를 받고 싶다. 그래서 찾아낸 책이 있으니 `태양으로 날아간 화살'이다. 이 책은 미국 남서부에 사는 푸에블로 인디언 설화를 바탕으로 지었다.

태초에 태양신이 생명의 불꽃을 쏘아 그 불꽃을 받은 한 여성이 아기를 밴다. 아이는 태어나 자라며 아비 없는 자식이라 놀림 받고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떠난다. 여행 중에 만난 옥수수밭 농부와 옹기장이는 소년이 누구의 아들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궁시장(활을 만드는 장인)은 소년이 태양의 아들인 것을 알아보고 큰 활을 만들어 소년을 화살로 삼아 태양으로 쏘아준다. 화살을 타고 날아가 태양에 다다른 소년은 아버지를 만난다. 하지만 태양신은 소년에게 자신의 아들임을 증명해 보이라고 한다. 소년은 사자, 뱀, 벌, 번개의 키바(푸에블로 인디언들이 제의를 지내는 지하의 방)를 거치는 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마지막 번개의 기운으로 생명의 힘을 충만히 얻어 강하고 아름다운 태양의 아들로 거듭난다. 태양신은 마침내 소년이 자신의 아들임을 인정하고, 돌아가서 사람들의 영혼에 생명을 주라며 다시 소년을 화살로 쏘아 땅으로 돌려보낸다. 소년이 태양의 아들로 푸에블로 마을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생명의 춤을 추며 소년을 반긴다.

이렇듯이 인간과 신의 영역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반신반인이 시련과 시험을 통과하여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막연한 기쁨과 함께 나도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소망을 준다. 도발을 부추기는 영웅의 결핍(한부모 가정이나 가난, 혹은 장애 같은)은 삶의 의지를 높이고 본질적인 고민 속에서 주체적인 자신을 찾는 동기부여다. 영웅의 특성은 신의 영특한 기운과 인간의 투지다. 인디언 설화에서 소년은 자기 존재의 근원이 되는 아버지를 확인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당당하게 맞서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어른 남성으로 자란다. 책에서 소년은 태양신의 아들이지만 현실에서는 `아비 없는 자식'이다.

프로이트는 운명론을 말했지만, 운명적으로 갖고 태어난 결핍이야말로 어떤 이에게는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결핍의 현실은 내면의 신적인 요소를 끌어내는 시험의 장인 셈이다. 결국, 이런 개인의 성장은 개인 차원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조롱하고 멸시한 곳에서 세상을 바꾸고 새로운 기운을 퍼트린다.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그의 에너지는 받고 싶다. 새해에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어리석음만 버려도 스스로에게 영웅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결핍의 수호신을 따라 `지금 여기서'떠나 낯선 길로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올해도 나는 떠날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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