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묵은 둥이 친구
나의 오랜, 묵은 둥이 친구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1.01.0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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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나보다 한 살 많은 친구가 있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였다. 꽃은 그 여인의 머리에도 피어 있었고, 핸드백에도 붙어 있었고, 웃옷 한편에서도 향을 발하며 피어 있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흩날리던 꽃은 떨어져 신발에 내려앉기도 했다. 그랬던 친구였는데, 그 여인에게서 더 이상 꽃을 볼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눈에선 맑음도 사라졌다. 그녀의 눈빛은 먼 곳을 향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같은 공간에 있으나 영혼은 그 공간에 있지 않은 듯 눈빛은 고요하다. 기억 속에는 존재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나도 없다. 점점 잊히는 중이다. 그렇게 그녀는 혼자서 자꾸 멀리 간다. 꽃을 피워 나비를 기다리던 친구는 이젠 멀리 두고 온, 어딘가 오고 있을 영혼을 기다리나 보다. 그러느라 시선은 먼 곳을 향하나 보다.

영혼을 기다리는 사람이 또 있다.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올가 토카르축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사계절> 속 주인공 얀, 그도 영혼을 기다린다. 운동과 취미 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아온 얀. 어느 날 출장길의 호텔방에서 잠이 깬 얀은 자기 이름도, 있는 곳이 어딘지, 왜 와 있는지 도통 알 수 없게 된다. 하물며 자기 몸속에 그 어떤 사람도 없는 것 같은 느낌마저 인다.

다음 날 찾아간 병원의 현명하고 나이 든 여의사에게 원인과 처방을 받는다. 영혼의 움직이는 속도는 육체보다 아주 느리단다. 그러기에 영혼들은 바쁘게 뛰어다니는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사람들을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혼들은 주인을 잃은 것을 알지만, 사람들은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른단다. 그러니 어딘가 오고 있을 영혼을 기다리면 된단다. 얀은 아주 많이, 빨리 일하느라 영혼을 오래전 그 어딘가에 두고 왔다는 것이다. 곁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얀은 영혼을 돌보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잘 살 수 있었다.

세상은 변화한다. 사람이 살아 있고 또 사는 한 그것은 당연지사다. 그 변화의 추이는 인간의 삶에 여유와 편리함을 주는 사물에 측정 기준을 둔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물들은 기막힐 정도로 스마트 해진다. 그로 인해 얻어지는 시간이 있다. 사람들은 지루함과 나태함을 느낄 여유도 없이 그 시간에 또 무언가를 한다. 지금 우리는 `그냥 있을 때'는 행복하지 않고 `무언가를 할'때만 흡족한 문화 속에서<바쁨 중독/셀레스트 헤들리 중> 살고 있다. 그냥 있기엔 마음이 불안한 책 속 주인공 얀도 안간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영혼을 놓친 줄도 모르고 달렸다. 이제 얀은 기다린다.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그곳에서 기다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의 영혼을 기다린다.

나의 친구도 달려왔다. 맏며느리로 사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고, 온 힘을 다하며 아내 역할 했고, 엄마로 사느라 정성을 다 쏟아 부으며 나의 친구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 친구에게 다가온 위기! 10여 년 전 시작 됐을 공소증후군 空巢症候群 즉 빈둥지증후군 시기일 듯하다. 다 커버려 엄마의 손길이 필요치 않은 아이들, 높아진 직급만큼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남편, 그런 상황은 그녀의 영혼을 놓치게 했던 듯하다. 귀찮다며 나오지 않고, 걸려 간 전화에 대답도 없고,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던 나의 친구는 `초로기 치매'란 진단을 받았다. 노령기에 접어들기 전인 45~65세 사이에 치매 환자를 일컫는 말이란다.

<잃어버린 영혼>이란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며 난 소맷자락에 수없이 눈물을 감춰야 했다. 어릴 적 놓친 영혼을 만나 행복해진 얀처럼 그녀도 잃어버린 영혼을 만나 안부를 물으며 등을 토닥이는 시간이 있길 소망해 본다. 그리고 여의사를 통해 이야기하는 글 작가의 말을 곱씹어 본다.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해야만 하는, 모든 장소에 있어야만 하는 이 세상에 잠시 등 돌리고 나의 영혼은 어디쯤 왔는지,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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