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1.01.0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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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휴일 날, 잔잔함을 깨우는 거센 파문이 몰아친다. 뜨악한 소식이 하루의 평화를 순식간에 깬다. 코로나 확진자가 우체국에 다녀가서 역학조사 중이라는 전화 한 통에 모든 일상이 일시 정지가 된다.

사무실의 CCTV를 돌려 확인한 결과 제일 가까이에서 그 사람을 응대한 나였다.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이 남이 아닌 내 일임을 실감한다. 혹시나 미심쩍어 그대로 있을 수가 없다. 내가 많은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보건소를 찾아 검사를 받았다. 긴 면봉이 코로 한없이 들어가 그 끝에 닿는다. 코끝이 찡하니 질금 눈물이 난다. 나만 생각했더라면 귀찮다는 생각에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 볼 일이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을 아는 순간, 눈물로 시큰하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마음은 내내 지옥이다.

만약 사무실과 가족, 방문한 식당, 마트까지 연쇄로 피해가 간다면 이를 어찌해야 할까. 걱정은 온통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보건소로부터 날아든 음성이라는 문자는 평화의 메시지다. 다행이다. 저절로 감사의 기도가 터져 나온다.

5인 이상 집합금지로 가족들과의 만남도 갖지 못하는 요즘이다. 아들이 있는 서울이 먼 나라인 것만 같다. 본 지 오래다. 생이별이 따로 없어 전화로, 문자로 자주 안부를 물어도 보고 싶은 마음은 갈증이 난다. 접촉이 접속으로 바뀐 작금의 디지털 온라인 상의 만남을 탄타로스의 갈증이라 하던가.

탄타로스는 본래 제우스의 아들로 신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이에 오만해져 신들을 시험하려 한 죄로 신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되어 벌을 받는다. 그를 무릎까지 잠기는 물속에 꼼짝 못하도록 세워 둔다. 바로 코끝에는 먹음직스런 과일이 달린 나뭇가지가 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허리를 굽히면 물은 금세 땅 밑으로 빨려 들어가 마실 수가 없다. 과일을 따 먹으려고 손을 뻗치면 나뭇가지는 바람에 날려서 높이 올라간다. 이렇게 눈앞에 보면서도 영원히 시달린다는 굶주림과 갈증에서 나온 말이다.

바로 눈앞에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있고 목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만나서 부둥켜안으며 토닥여주고 싶다. 그런데 손가락 하나도 접촉할 수가 없다. 사랑과 참회의 눈물이 메마른 사막에 사는 듯한 우리가 지금 느끼는 이 갈증은 코로나가 부리는 악마의 주술이다.

혼자 맞설수록 기세가 더 커지는, 함께여야만 뒷걸음질칠 줄 아는 바이러스의 저주다. 두렵다고 꼭꼭 숨으면 더 낮본다.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답답함이 폭력으로 변하여 우리를 괴물로 만들지도 모른다. 지금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눈물이 필요한 시기라고 이어령 교수는 말한다.

이제 자신을 위한 절제와 이웃을 향한 그리움을 나로부터 빠져나와 남에게로 눈을 옮겨놓아야 할 때다. 소득이 줄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쓰러움의 눈물. 밤낮으로 봉사하는 의료진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눈물. 직업을 잃고 좌절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희망을 전하는 위로의 눈물. 요양원의 노인들이 자식을 보지 못해 애타는 마음에 보내는 안타까움의 눈물.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탄타로스의 갈증을 풀어주고 코로나 악마의 주술을 풀 주문(呪文)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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