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말 빚을 갚자
새해, 말 빚을 갚자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1.01.0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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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새해가 밝았다.

새해맞이 첫 업무는 2월에 졸업할 대학원 석사과정 선생님들의 논문심사였다. 작년 1학기에 논문 주제를 정하고, 8월에 공식적인 계획서 발표를 한 후로 연구를 진행해온 선생님들은 2학기 코로나19로 어려운 학교 상황이었지만 열심히 논문을 작성하였다. 이번 심사과정에서는 학생이 수행한 연구가 독창적인지, 연구 방법과 절차는 잘 확립되었으며 윤리를 준수해가며 논리적으로 수행되었는지, 논문을 작성하면서 표절이나 기타 출처 제시가 명확한지 등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하였다.

그간의 성과에 대해 꼼꼼하게 점검받는 것은 물론 석사학위를 취득하기 적합한지를 구술시험을 통해 평가받는 자리이기에 논문심사에 참여하는 교수나 심사를 받는 학생이나 약간의 긴장을 하게 된다. 학생의 긴장이야 심사받는 입장이니 이해하겠으나, 심사하는 교수의 긴장이라니! 지도한 학생이 심사받을 때는 학위를 청구한 학생이 아니라 지도교수인 내가 평가받는 기분이고, 심사위원장이나 심사위원으로만 심사에 참여할 때는 그간 발표해온 내 논문들 전체가 내가 말하고 있는 심사 의견에 걸맞게 쓰였는지 역시 스스로가 평가받는 기분이 든다.

불교의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보면, 사람은 태어날 때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고 한다. 인도사람들은 우리의 말이 범할 수 있는 실수를 그리 비유한 것이다. 사람은 입 안의 그 도끼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찍는다. 불교의 법문에는 입은 재앙의 문이니 반드시 엄히 단속하라는 말씀도 있다. 이때 입을 단속하라는 것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쏟아 놓는 우리의 수없이 많은 말의 의미에 대해 거듭 반성하고 생각하라는 의미다.

법정스님의 법문에는 우리가 진짜 해야 할 말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해야 할 말은 나 자신에게도 덕이 되고, 또 듣는 상대방에게도 덕이 되며, 그 말을 전해 듣는 제삼자에게도 덕이 되는 말입니다. 이것이 해야 할 말이에요. 내가 입 벌려 하는 말이 나 자신에게도 덕이 되지 않고, 또 그 말을 듣는 상대방에게도 덕이 되지 않고, 그 말을 전해 듣는 제삼자에게도 덕이 되지 않는 말, 그것은 말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가 무심코 불쑥불쑥 내뱉는 말은 악의를 가지고 했건 선의를 가지고 했건 간에 진짜 쓸 말은 많지 않습니다.'

선생이 하는 일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그것도 배우는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자들이라 말한다. 뒤집어 말하면 거기에 선생의 어려움과 비애가 있다. 결국 배움이라는 것은 선생 쪽에서 보나, 학생 쪽에서 보나 바람직한 완벽의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교학상장, 선생도 학생도 서로 배운다는 말이 회자되는 것이다. 또한 선생이 하는 말은 그 말을 하는 선생이나, 듣는 학생이나, 또는 그 말을 전해 듣는 제삼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니 다행이기는 하다.

요즘 자신의 과거 말 빚을 갚느라 진땀을 빼는 정치인들이 많다. 장관 청문회를 할 때마다 과거 비판했던 일들이 어쩌면 그렇게 자기에게 한 자아비판처럼 딱 들어맞는지 신기할 정도다. 논문심사에서 했던 말 빚 역시 두고두고 논문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그 덕에 정치인도, 선생도, 그리고 나도 소처럼 우직하게 조금씩 성장하게 되지 않을까?

참, 실제로 소는 영특하기까지 하다고 한다. 좁은 미로를 따라 먹이를 찾는 실험에서 참여한 대부분의 소가 그 미로를 통과하여 먹이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영특한 소처럼 미리미리 말 빚을 지지 않는 한 해도 기원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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