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花樣年華)
화양연화(花樣年華)
  • 한기연 수필가
  • 승인 2021.01.0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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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노년의 아름다움이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다. 화려한 조명 아래 파격적인 변신으로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 있고 당차게 인생의 황혼길을 걷는다. 결승전으로 향하는 시니어 모델의 인생이야기부터 무대는 펼쳐진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 늘었다. 특히 트롯 경연을 방송사마다 경쟁하듯 벌여서 놓치지 않고 챙겨보는 재미로 시간을 보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출연자의 눈물겨운 사연에 더해진 구슬픈 노래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면서 알게 된 사실은 다양한 경연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50세 이상 중년들이 도전해서 펼치는 시니어 모델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채널을 돌리다가 결승진출자 일곱 명의 경연부터 보게 되었는데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서 애청자가 되었다.

내 나이와 비슷한 연배부터 70대 후반까지 인생 후반전에서 다시 도전하면서 열정을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보게 된 장면은 결승선을 향해 가는 일곱 명의 도전자들이 표현하는 `아트워크 미션'이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절인 `화양연화'를 각자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표현했다. 스토리가 있는 무대는 굴곡진 인생의 아픔과 그 아픔을 딛고 살아온 사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지난 미션에서 탈락 후보였던 출연자는 로커 스타일로 파격 변신을 시도하며 `해방'을 표현했고, `청춘', `유혹'등의 키워드로 각자의 인생을 담아 연출했다. 이번 미션에서 우승자가 된 70대 초반의 여성은 `이별'을 선택했다. 55년 전 첫사랑과 집안의 반대로 이별했었는데, 이제는 첫사랑과 끝내고 싶다며 아련한 감정을 풀어냈다.

2학기에 자유학기제 수업으로 여중학교에서 바느질을 가르쳤다. 삼십팔 년 만에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감회가 남달랐다. 교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예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운동장과 낡은 건물이 가슴을 뛰게 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한 곳에 차를 세우면서, 교복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친구들과 말 타기를 하던 모습을 그려 보기도 했다.

시니어 모델들의 무대를 보면서 내 인생의 `화양연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과연 언제였을까?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공부도 곧잘 했고, 앞에 나서서 활동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아련한 추억처럼 청춘이어서 아름답고 소중했었다는 느낌이 앞선다. 결혼 후 나는 삶을 알차게 살았다. 집안 살림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내 이름 석 자로 불리면서 하고 싶은 일 하고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면서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지지자는 물론 남편이었다. 스물다섯 해를 함께 살아오면서 별일 아닌 일로 다투고, 위기 앞에서는 뜻을 모으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결혼 생활을 잘해왔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으니 인생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결혼도 나의 최고 정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40대의 마지막 날은 우울했다. 쉰 살이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거울에 비춘 얼굴은 주름살이 흉하게 돋보였다. 올해는 여유가 생기면서 쓸데없는 잡념이 많았다. 노래로 위로받고 타인의 삶에서 위안을 얻으며 우울감에서 벗어나 희망을 찾는다.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하고 대중가요의 한 줄 가사처럼 `오늘이 가장 젊은 날'로 살고 있다.

황혼의 무대 위를 걷는 도전자와 달리 내 인생의 키워드는 그때마다 다르고 화양연화는 아직 진행 중이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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