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1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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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휴일
한 신 구



어느 틈에 환해진 창문을 보며 깜짝 놀라 문을 여니 초록빛 앞산이 한걸음에 다가와 흐릿한 여잠을 깨우고 달아난다. 해맞이 준비에 상기된 동녘 하늘가로 부지런한 새떼들이 날아다니고 싱그러운 바람이 솨아 - 나뭇잎들을 흔들고 달려온다.

아! 휴일이구나.

갑자기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그래, 오늘은 쉬는 날이지.

지난 밤 새벽이 다 될 때까지 서강대 영문학 교수인 장영희 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책을 읽다가 억지로 잠을 청했는데도 심신이 이렇게 깃털 같음은 녹음방초가 성한 유월의 휴일 아침이기 때문일 것이다. 겨우내 억누르며 봄을 기다려 왔기에 더욱 용솟음치는 생기로, 연둣빛 싹을 틔워 천지 가득 갖은 꽃을 피워내고 이제 두 팔 벌려 금빛 햇살을 욕심껏 빨아들이는 초여름의 생명들. 내게 주어진 지난 1주일이 벅차고 힘겨웠던 만큼 다가온 휴식은 더 달콤하다.

그 책 속에는 인생을 성공으로 이끈 사람들의 비밀이 있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몸짱 아줌마, 시간을 정복한 소련의 과학자 류비세프, 미국의 사상가 벤자민 프랭클린 등은 바로 '인간시간표'였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 계획을 세우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철저하고 규칙적으로 절제와 성실, 중용, 겸손 등의 덕목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보낸 결과 그들은 자신이 하고자 했던 그 이상의 목표를 이루고 삶을 정리했다.

공연을 관람하고 직장에 다니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정상적으로 하면서도 많은 책을 쓰고 논문을 완성했다. 어쩌다 보니 내 생활도 하루하루가 규칙적으로 되어 버렸다.

6시 기상, 7시 30분 아침, 낮 12시 점심, 퇴근 후 오후 5시 등산, 7시에 저녁, 밤 10시까지 운동, 12시 수면. 좋은 책이나 영화라도 만나면 새벽 2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 할 그 무엇도 이룬 게 없다. 남보다 많이 놀거나 자는 것도 아닌데 정복은커녕 대부분 시간에 쫓기고 피로와 아쉬움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도대체 그들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능력의 차이 노력의 차이 물론 그런 점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좀 더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퇴직하고 나서 좀 더 실력을 쌓은 후에. 이렇게 미루며 오늘을 보내왔기 때문이리라. 몇 백 년이라도 살 것처럼.

부지런히 아침을 준비하며 오늘의 계획을 세워본다. 인간시간표는 못 되더라도 후회스럽지 않게 휴일을 보내야겠다. 장마가 오기 전 우선 따끈한 햇볕에 이불도 빨아 널고, 산에도 가고, 모처럼 모내기가 끝났다는 논에라도 다녀와야겠다. 아마 논둑 옆 뽕나무에는 오디가 까맣게 익었겠지. 오디를 따다가 설탕에 재워 차를 담그자. 내년 모내기 때 가져가서 얼음 동동 띄운 차라도 한잔 나누게.



"뻐 꾹 - 뻐 꾹 -."

뻐꾸기가 운다. 온갖 새들이 호오오롱- 휘용-. 화답을 한다. 산바람이 한차례 불어와 신선한 공기를 집 안 가득 채운다. 나도 새로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이 첫여름의 휴일을 시작한다. 오늘일이 내일로 미루어지지 않도록 서두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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