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소중한 사연
다 소중한 사연
  • 석재동 기자
  • 승인 2021.01.03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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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석재동 부장(취재팀)
석재동 부장(취재팀)

 

직업이 기자이다 보니 이래저래 걱정해야 하는 일도 많다. 나랏일부터 주변의 소소한 일상까지 걱정거리 투성이다. 그것도 지역일간지 기자이다 보니 충북도내 다양한 정책과 사건·사고를 꿰고 산다. 하지만 대부분 기억은 칭찬보다 지적이 다수고, 해법을 찾으라고 요구하는 게 흔하다. 반대로 기억속에 절로 미소짓게 하는 뉴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새해 새출발은 항상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린 소소한 것을 기억해내고 새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습관처럼 되뇌이곤 한다.

크고 작은 정성을 소리 없이 전하는 익명의 기부 천사들이 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먼저 매년 연말이면 제천시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지난해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지난 연말 제천시 사회복지과에 모 연탄 판매업체의 연탄 보관증이 팩스로 전달됐다. 1420만원어치 연탄 2만장을 구매할 수 있는 영수증 성격이었다.

시는 보관증을 전달하는 등 기부 방식이 동일하고, 한두 해를 제외하고는 매번 2만장의 연탄을 보냈다는 점에서 이 독지가를 2003년부터 해마다 이맘때 연탄을 기부한 `얼굴 없는 천사'로 보고 있다.

옥천군에서도 5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 독지가가 이원면에 성금 100만원을 전달하며 “지역의 소외계층에 잘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괴산군 괴산읍에서는 익명의 기부천사가 현금과 손 편지를 놓고 사라졌다. 현금 50만원이 들어있는 봉투와 손 편지가 괴산읍 희망의 소리함에 넣어두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다.

보은군 장안면에서도 익명의 여성의 10만원이 든 봉투와 20㎏짜리 쌀을 놓고 갔다. 이 여성이 쌀을 기부한 건 올해만 세 번째다.

코로나19사태 최일선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의료진에게 음료와 간식, 위생용품 등으로 온정을 전한 사례도 셀 수 없이 많다.

지난여름 충북도내 곳곳이 최악의 물난리로 고통받고 있을 당시 수재민 눈물을 닦아주고 아픔을 나누려는 온정의 손길도 수없이 잇따랐다. 물품을 기부한 이들도 있었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자원봉사자도 많았다.

이같이 충북도내 곳곳에서 은밀(?)하게 이어지는 익명의 기부는 우리 주위에 적지 않다. 이들을 생각하고 기억한다면 나라의 걱정거리라 할지라도 해법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 보다 자극적인 사건에 수많은 선행은 중요도에서 뒤로 밀렸고, 밀린 만큼 도민들의 기억속에 크게 자리 잡지 못했다.

답답하다. 이 좋은 이야기들이 왜 제대로 널리 알려지지 않는지 말이다.

고 신영복 선생은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여름 `징역살이'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합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사람들이 추운 겨울을 그래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자 행복은 바로 옆 사람이다.

해마다 추운 겨울은 돌아오지만, 해마다 온정도 줄을 이어 마음이 따뜻하다. 세상은 이래서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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