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야, 해야지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야, 해야지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 승인 2020.12.3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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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정상에 오르는 게 아니야. 올라야지'` 홈런을 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홈런을 치나? 쳐야지'`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잘하는 게 아니야. 해야지!'` 그러니까!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야. 해야지'ㅇㅇ은행 광고다. 순간 광고에 몰입되면서 은행 홍보의 전하는 메시지보다는 미루고 미룬 나의 일상, 정곡을 찌른다. TV의 짧은 시간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킨 이미지가 마음을 확 사로잡는 순간 ㅇㅇ은행의 광고는 어느 날부턴가 머릿속에 자리 잡고 앉아 떠나지 않는 나날이다.

겨울 한복판에 섰다. 연일 한파가 기록 경신이라도 하는 듯 날마다 한파주의보다. 날마다 하강하는 날씨에 움츠러들러 점점 쪼그라진 몸을 끌고 산행할 요량으로 큰 맘 먹고 나섰다. 길가 사이사이 가늘게 이어진 사잇길은 심줄처럼 이어진 실개천이 도랑을 만들고 개울을 만나 강물이 되는 것처럼 뒤엉키듯 늘어진 샛길은 용케도 한 길로 합쳐져 등산로 입구에 선다. 등산로는 농로처럼 제법 넓고 반질반질 다져진 길이다. 정상은 그리 높지 않은 동산이지만 몇 개의 야트막한 긴 능선을 타고 넘어야만 정상에 오른다. 허나 유혹은 달콤했다. 야무지게 시작한 산행은 언제나 정상을 찍지 못하고 돌아섰다. 머리로는 저까짓 거 정상쯤이야 오르면 되지 다 잡아 마음먹지만 무거워진 다리, 턱까지 차오르는 숨, 정상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때부터는 스스로 나를 위안하면서 이만하면 괜찮아 포장을 하곤 뒤돌아 왔다. 그럴 때면 누가 뭐라고 하는 이 없음에도 턱밑에 주춤거리는 꼴에 왠지 뒤통수가 뜨거웠지만 애써 모른 체 뒤돌아서곤 했다.

늘 시작은 거창했다. 마음속에 나비처럼 훨훨 날아올라 우화등선을 상상하면서 오르지만 달콤한 유혹에 빠진 난 정상을 지근거리에 두고 습관적으로 핑곗거리를 찾아 스스로 위안하면서 뒤돌아오곤 했다. 허나, 올 초겨울부터 시작된 광고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정상에 오르는 게 아니야. 올라야지'머릿속에 맴도는 은행 광고의 멘트 그 광고가 발목을 잡아 멈출 수 없었다. 아무리 야트막한 산이라도 숨이 턱턱 막히고 등줄기가 축축하게 후끈거린다. 자벌레처럼 스틱을 앞으로 쭉 뻗으며 무거운 다리를 끌다시피 꿈틀꿈틀 기어 올라갔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잠을 참는 눈꺼풀'이며,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까지의 마음의 거리'라더니 정상이 코앞인데 어찌 그리 멀게 느껴지는지 몸 따로 마음 따로다.

유독 느릿해 보이는 자벌레, 한 치 어긋남도 없이 앞으로 쭉 뻗곤 뒷부분을 당겨 마치 원을 그리듯 꼬리를 가슴 가까이 붙여 고리처럼 만들어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앞으로 뼘을 재듯 반듯하게 나아간다. 답답하고 더디지만 포기하는 예가 없다. 오체투지처럼 납작 엎드려 있다가 뒷부분을 힘차게 끌어당겨 앞으로 쭉 전진할 때는 망설임도 없이 힘차게 전진한다. 그렇게 자벌레처럼 걷다 걷다 보니 정상이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나도 그래었다.

팍팍한 요즘 발아래 펼쳐진 들녘엔 속 빈 지푸라기들이 나 뒹굴고 있는 이 겨울, 정상 표지석 앞에 가만가만 두 손 모으고 목례를 했다. 갈팡질팡 달음질치던 마음을 한해 끝자락 망루에 서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뭐하나 해놓은 것도 없는 2020년이 훅하고 날아가 버린 것 같아 못내 아쉬웠는데 오늘은 뿌듯하다. 자벌레처럼 더디지만, 정상을 딛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날 저녁 내년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냉장고 문에 꾹꾹 눌러 붙여 놓았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야. 해야지.'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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