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항아리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12.2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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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항아리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들로 놓여 있다. 작은 연못 옆에 자리한 장독대는 남편이 만든 것이다. 10년 전 집을 새로 지을 때 집터를 고르면서 나온 크고 작은 돌들을 일일이 짜 맞추었다. 장독대뿐 아니라 연못 주변 모두 남편은 돌들로 바닥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만 보아도 남편의 꼼꼼한 성격을 알 수 있다. 강돌이 깔린 마당과 남편이 만든 연못 주변의 돌바닥은 제법 잘 어울린다. 비가 오는 날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돌들에 스며들어 그 운치를 더한다.

장독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가 제일 오랫동안 머물다 간다. 사실 처음 장독대를 만들고 그곳에는 작은 항아리 몇 개만이 놓여 있었다. 직접 장을 담그지 않았으니 큰 항아리가 굳이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잦은 이사도 그 원인 중의 하나였을 테다. 그동안 친정 엄마와 시어머님이 주시는 장들을 조그만 항아리에 넣어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이 다 완성되던 그해 가을 친정 엄마는 이년 여를 치매를 앓다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리고 친정집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장독대에 있던 항아리 몇 개를 우리 집으로 가져다 놓았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했던가. 어엿한 장독대가 생기고 항아리를 보니 장을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따뜻한 봄, 큰 딸아이와 장을 담그기로 했다. 먼저 항아리들을 수돗가로 옮겼다. 항아리들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들로만 골라 와서 그런지 옮기는데 수월했다. 헌데 항아리들을 씻으려 살펴보니 멀쩡한 게 없다. 가져 올 때는 자세히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못생겨도 이리 못생겼을까. 주둥이가 비뚤지 않으면, 옆구리가 쑥 들어가 있고, 바닥도 울퉁불퉁하여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 것이 있는가 하면, 금이 가 땜질을 한 항아리도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옆 동네에는 항아리를 굽는 가마가 있었다. 가난했던 우리 집은 살림살이를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그곳 옹기장이에게 항아리를 헐값에 샀던지 아니면 거저 얻어 왔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항아리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장 담그는 것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듯하다. 그 시절 어머니의 하루는 해보다 더 빨리 시작되었고 달보다 더 늦게 하루를 마감했다. 땅 한 뙈기 없던 우리 집 살림에 남의 집 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했던 그때 어머니에게 하루는 너무도 짧았을 것이다.

항아리가 말을 한다. 비뚤어지고, 휘어지고, 금이 가 땜질도 하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던 그 많은 어머니의 삶을 말이다. 금이 가서 물이 새는 것들은 화단과 마당의 경계에 놓았다. 그 위에 늘어지는 화초를 올려놓으니 제법 그럴싸한 화분 받침이 된다. 그리고 비뚤거나 휘어졌더라도 물이 새지 않는 것들은 장을 담아 놓는 항아리로 쓰기로 했다. 아프도록 못생겼지만 그 항아리에 담은 장들의 맛은 그 어디에도 없는 맛이 되어 주리라 믿었다.

몇 달이 흐른 뒤 된장을 떠먹어 보았다. 항아리 때문일까? 아니면 딸아이와 나의 정성 때문일까? 장맛이 일품이었다. 처음 담아 본 된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맛이 좋다니. 아마도 그건 햇볕이 잘 드는 장독대와 투박하고 못생겼지만 여전히 성능은 좋은 항아리와 사람의 정성이 빚어낸 솜씨이리라.

올해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올 한해는 모든 사람들에게 끔찍이도 두렵고 무섭고 답답한 해였다. 내년에도 이 사태는 어느 정도 지속되리라 본다. 그래도 우리는 또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투박하고, 서툴고 때론 어긋나기도하지만 언제나 따뜻하게 데워주는 가족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일기 예보에 오후부터 눈이나 비가 온다더니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다. 저녁에는 못생긴 항아리에서 떠온 된장 한 숟갈을 넣고 끓인 배춧국으로 헛헛한 마음을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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