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장수셈
독장수셈
  • 김정옥 수필가
  • 승인 2020.12.2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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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기대의 발단이다. 글을 본 문우 말씀이 주제가 확실하고 은유도 좋고 재미있다며 칭찬이 늘어진다. `대상'받으면 갈치조림 사라고 한바탕 너스레를 떤다. `그깟 갈치조림이 문젤까, 더한 것이라도 살 수 있지'마음이 벌써 허공을 둥둥 떠다닌다.

마감 날짜가 코앞이다. 마침맞게 이런 공모를 만난 것도 하늘의 계시일지도 몰라. 잘 되려나 보다 하는 쪽에 굵은 코바늘로 코를 꿰어 짜기 시작한다.

맘이 급했는지 응모 요강도 제대로 안 읽어 보고 작품만 덜렁 보냈다. 응모 신청서와 개인 정보 동의서를 붙여야 하는데, 대실수였다. 수정해서 다시 보내려니 콘텐츠가 열리지 않는다. 내일이 응모 마감인데, 똥끝이 탄다. 직원에게 이러구러 설명했더니 담당자 메일로 보내라고 한다. 상을 탄 후 얘깃거리가 하나 또 늘었다. `우여곡절 끝에 응모했는데, 이런 좋은 결과가 오려고 그랬나 보다.'라고.

동양철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사주명리학을 강의하는 후배에게 공모전에 응모했는데 어떨 것 같으냐고 넌지시 물었다. “언니! 아주 좋아요. 기대해 보세요. 연락 올 거예요. 금상 타겠는데요?” 쭈글쭈글한 풍선에 헛바람이 차오른다. 헤실헤실 웃음이 삐져나오고 풍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는다.

발표 날짜가 며칠 남았는지 시시때때로 손가락셈을 한다. 어렸을 적 소풍 가는 날짜를 손꼽아 헤아리는 심정이 이랬을까. 날짜를 기다리니 시간이 더 해찰을 부린다.

발표 날 새벽, 전에 없이 눈이 일찍 떠졌다. 문우가 발표 날을 기억하고 좋은 꿈 꿨느냐고 한다. 내가 무슨 꿈을 꾸었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돈 꿈이었다. 혹시나 하고 해몽을 검색했다. 상장을 타거나 좋은 일이 생긴다나. 참, 이렇게 또 한 가지 에피소드가 생기는구나,

발표가 왜 이렇게 더디지? 일각이 여삼추라더니 `딱'지금이다. 한 달을 기다렸는데 단 몇 시간이야 못 기다릴까. 홈페이지에 문턱이 닳게 드나든다. 아, 그런데 분명 있어야 할 내 이름 석 자가 없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몇 번을 위로 아래로 살펴보아도 안 보인다. 이럴 수가.

아, 헛물을 제대로 켰구나. 무슨 근거도 없는 잣대에 대고 가당찮은 꿈을 꾸며 기다렸던가. 주최 측이 찾는 골자를 알아차리지 못했나 보다. 너스레를 보지 못해 허방다리에 빠졌다. 속절없이 헛웃음만 나온다.

문우의 농담 섞인 격려 말씀을 새겨듣지 못하고 깝신대는 가벼움이라니. 후배의 말도 응모한 사람에 대한 인사치레인 것을. 혼자 찧고 까불던 내 꼴이 우습다. 떡 줄 사람은 진작 샛길로 빠져 가버렸는데 김칫국만 한 사발 들이켰더니 속이 쓰리다.

상금을 타면 뭘 할까? 내년쯤 수필집을 내고 싶은데 출간비로 쓰면 좋겠다. 남편에게 옷 한 벌 사주며 생색이나 낼까. 문우들에게 밥 한 번 크게 사야지. 시상식장에는 누구랑 가지? 별의별 상상이 나푼나푼 나비춤을 추며 날았다.

`독장수구구'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허황한 계산을 하거나 헛수고로 애만 씀을 이르는 말이다. 내가 그 독장수셈을 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하지만 쓴잔도 마셔보고, 헛물도 켜고 헛꿈이라도 꾸어야 마음자리가 야무지게 익어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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