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하다
삽질하다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0.12.2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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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어떤 사람이 잘 산다고 말할 때 그 기준은 보통 돈이다. 돈의 쓰임이 곧 삶의 자세다. 젊을 때부터 나를 던져 돈과 삶을 거래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돈의 흐름을 따라 허겁지겁 쫓아가게 된다. 그렇게 돈이 성공의 기준이 되면 삶의 만족을 돈 아니면 채우기 힘들고 적은 돈으로 행복을 창조하는 일에 무능해진다. 고

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너는 무엇을 먹고 마실까 보다, 누구와 먹고 마실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나야말로 좋은 벗을 사귀기보다 돈 되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하며 생계를 꾸려왔다는 자괴감이 든다.

물론 번 돈으로 잠시 행복했다. 12월의 끝자락에서 찬찬히 돌아보니 무엇이 중한지 이제야 다시 보인다. 벚꽃보다 아름다운 벗이 찾아와 한가롭게 걸었던 길, 오래된 벤치에 앉아 은행잎이 바람에 남김없이 떨어지는 시간을 오롯이 함께한 가을의 벗이 있었다. 초겨울 불쑥 찾아와 따끈한 칼국수를 나눠 먹으며 다음 일주일의 일상을 풀어냈던 기억들이 가슴에 별처럼 꽂혀있다.

허둥지둥 집에 들어와 그림책 책장을 뒤진다. 그리고 찾아낸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존 클라센과 맥바넷이 그리고 쓴 그림책을 뽑아 들었다. 이 두 사람은 좋은 벗이다. 한 사람은 미국에, 한 사람은 캐나다에서 태어났지만, 함께 그림책 작업을 하며 둘도 없는 짝꿍이 되었다.

그림책 속 주인공 샘과 데이브는 월요일에 함께 땅을 파기 시작한다.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아낼 때까지 파야 해, 그게 우리의 사명이야.'로 시작한 땅파기 삽질. 점박이 강아지도 함께한다. 샘과 데이브는 자꾸자꾸 땅을 판다. 그림책은 두 주인공을 놀리기라도 하듯이 땅속의 커다란 보석을 비껴가는 삽질을 보여준다.

통에 담아 온 초콜릿 우유와 과자를 나눠 먹고, 방향을 틀어서 파보기도 하고 서로 다른 곳을 파보기도 하지만 두 친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얼굴이 까매지도록 열심히 보석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흔들림 없이 그들이 믿고 있는 사명에 충실하며 어느 순간엔 지치기도 했다. 그러다 둘은 까무룩 잠에 떨어졌다. 샘과 데이브는 진짜로 떨어지고 있었고, 부드러운 흙 위에 털썩 내려앉았다. 처음 땅파기를 시작했던 집 앞 정원이다. 샘과 데이브가 동시에 외친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 그리고 그들은 초콜릿 우유와 과자를 먹으러 집으로 들어갔다.

별 내용 없이도 질문과 사유의 파도가 가슴을 파고든다. 그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것을 발견했던 것일까.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세상이 욕망하는 욕망을 따라 열심히 삽질을 했지만, 손에 쥔 것이 없음에도 멋졌다고 말하는 두 친구는 삶 자체를 즐긴 것 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보석은 무엇인가, 나는 공허한 삽질에도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좋은 벗들이 보석이다. 슬플 때 슬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좋은 것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 맛있는 것을 먹으며 함께 먹고 싶은 사람, 스며들 듯이 내게 와서 계절을 함께 보내고 황당한 약속에도 손가락 걸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내겐 보석이다. 그들이라고 왜 단점이 없겠는가, 나도 그들 못지않은 어리석음을 갖고 있으나 친구라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묶인 우리는 샘과 데이브가 실망하지 않고 땅을 팠듯이 그렇게 우정을 쌓았다. 그래서 얻은 소중한 사람들이다. 다시 살게 되는 새해에는 이런 좋은 사람들과 사명을 찾아 무언가 해보고 싶은 가슴 설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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