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타비
아시타비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0.12.2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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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밖은 설국이다. 며칠 전에 온 눈이 겨울 풍경에 한껏 담겨져 있다. 온유한 햇볕이 거실에 넘어들어와 소파에 내려앉아 동지(冬至)의 추위를 달랜다. 나도 몸을 기대 느른함을 푼다. 어느새 토끼잠을 잔 모양이다. 겉잠에서 깨어서인지 머리가 지근지근하다.

잠을 물리려 찻물을 올린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다 보면 금세 톡하는 소리를 내며 커피포트가 꺼진다. 임무를 완료했으니 부어도 된다는 신호다.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붇자 커피향이 퍼진다. 나는 이 과정이 좋다. 첫 모금의 커피가 안으로 흘러들면 마음에도 부드러움이 스며든다. 주말이면 이렇게 혼자서 빈둥빈둥 보내는 날이 많다. 그이는 휴일이 더 바쁘다. 회사가 노는 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와 함께 놀아주지 못해서, 나는 혼자만 놀아서 서로에게 미안해한다.

요즘은 주위에 코로나 확진자가 삼십 명이나 생겨 겁이 나고 날씨가 추워 운동도 엄두를 못내 집에만 갇혀 지내기가 일쑤다. 혼자서 노는 법을 알만도 하건만 아직도 시쁘게 보내는 날이 종종 있다. 오늘 같은 날은 온통 생각이 나에게로 고정된다. 새로운 곳에서의 낯섦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들. 달포가 지난 지금에서야 여유가 찾아온다.

왜 느슨함은 어제라는 지나간 시간을 몰고 오는지 모르겠다. 하필이면 꼭 아픈 기억과 같이. 전에 있던 곳에서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마음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쓰러지기 일보직전에 명퇴를 결정했다. 그 기간까지 두 달 남은 시점에서 시간에 내 운명을 맡겼다. “신의 뜻대로 하소서”어떤 결말을 가져올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마음을 내려놓았다. 나의 완주를 응원해주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자리를 옮기는 예는 극히 드문데 기적처럼 전출 명을 받았다. 명퇴는 맺음을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것이기에 싫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을 미워하는 내내 고통스럽다. 남을 원망하는 일은 부메랑이 되어 나를 괴롭힌다.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우울한 시간이다. 빛도, 소리도 멈춰버린 곳, 무서우리만치 고요한 심해에 미움이 부초로 떠 있다. 내가 옳으면 상대도 옳다고 여기는 법이다. 나를 싫어하는 만큼 편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불쑥 수면위로 떠오른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죄다 남 탓으로 돌림을 뜻한다. 올 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꼽은 말이기도 하다. 교수들은 `내로남불'을 한자로 옮긴 신조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정했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말이다.

`아시타비'의 선정이유는 모든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상스럽게 비난하며 헐뜯는 소모적 싸움만 무성할 뿐, 협업해서 건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중 잣대를 가진 사람을 빗대고 있다. 남은 비난하면서도 나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이다.

더욱이 코로나19가 심각한 상황에도 여야가 도덕적 시비에 빠져 사회 전반에 극심한 피로만 주었다는 비판이 들어 있다.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 검찰, 지식인을 질타하는 목소리다. 지난 1년간 우리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일 듯하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나에게도 내로남불은 부끄러운 반성이다.

나에게 묻는다. 네 잣대는 치우침이 없이 공평했었느냐고. 대답을 잃고 묵비(?秘)중이다. 내 잣대엔 내가 옳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향해 잔뜩 키워버린 미움이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잘못된 걸 알고, 용서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 세월한테 배우며 또 한 살의 나이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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