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휴식과 소통의 공간, 옥천 은산정(隱山亭)
주민들의 휴식과 소통의 공간, 옥천 은산정(隱山亭)
  • 김형래 강동대 교수
  • 승인 2020.12.2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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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옥천 은산정(隱山亭)
옥천 은산정(隱山亭)

 

옥천군 청산면(靑山面)은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청산현(靑山縣)이었다. 신라 때 굴산현(屈山縣)이었으나 경덕왕 때 기산현(耆山縣)으로 고쳐서 삼년군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 초에 청산으로 고쳤다. 조선시대 청산현은 현재의 청산면과 청성면, 보은군 내북면 주성부곡까지 6개 면 83리를 관할하는 큰 고을이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옥천군에 통합돼 하나의 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신라 때 교통이나 군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후방기지 역할을 했던 청산은 조선시대에는 영·호남에서 영동, 보은, 청주를 거쳐서 한양으로 가는 교통로상에 위치해 관리와 행인들이 쉬어가던 관급여관인 오곤원(吾昆院), 은천원(銀川院), 주성원(酒城院)이 있었다.

근대기의 청산은 보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의 진원지로서 중요한 곳이다. 최시형이 은거하던 청산 문바위골은 동학교도 최초의 방포령(放砲令)이 내려진 곳이며, 3만여 동학교도가 집결해 보은의 관군과 일본군을 향해 돌진했던 역사적 사건의 고을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라도 전봉준 중심의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된다.

일찍이 노산(蘆山) 이은상 선생은 고려가요 청산별곡(靑山別曲)의 `청산(靑山)'이라는 지명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로 교과서에서 닳도록 외우며 배웠던, 고려가요 중 가장 아름답다는 청산별곡. 거란과 몽고 등의 외침이 여러 번에 걸쳐 수십 년 동안 일어났고,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등 왕권을 두고 벌인 기득권층의 내란, 무신란 이후 격변과 민중반란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내우외환이 끊이질 않았던 고려시대, 백성들에게는 평화롭게 머루와 달래를 먹으며 청산에서 큰 욕심 없이 평화롭게 살고자 했던 마음의 이상향이 이곳은 아니었을까?

지금도 청산은 면의 중앙으로 보청천(報靑川)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으로는 드넓은 들판이 펼쳐진 물산이 풍부한 곡창지대이다. 마을 뒤로는 유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덕의산(德義山, 490m)과 도덕봉(道德峰, 543.5m)이 우뚝 솟아 마을을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그 속에 자연을 벗 삼아 대대로 농사지으며 살아온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은산정(隱山亭)은 청산면 교평리 평상목마을 위쪽에 동향으로 있다. 「청산면지」에 따르면 평상목은 `향교말 동쪽에 있는 마을로 부근 지형이 평상을 펴 놓은 것처럼 생겨 유래됐다고 한다. 평상목은 특히 평상처럼 좀 높게 있어 지리학적으로 퇴적지형이 형성되고 있고 유기질이 잘 배출되지 않아 기름진 옥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은산정(隱山亭)은 김상균(1903~1988)이 1974년에 건립하였다. 김상균은 향리에 있는 평범한 선비였다. 청운(靑雲)에 별 뜻이 없었다. 그가 지향했던 식견은 김상균이 지은 `隱山亭原韻'이란 시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김형래 강동대 교수
김형래 강동대 교수

 

은산정(隱山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으로 소로수장으로 마감했다. 정자의 사면에 띠살문을 설치하여 방처럼 꾸몄는데, 온돌 없이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어 주로 여름철에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자가 있는 곳은 보청천이 휘돌아가는 곳으로 예로부터 마을 청년들이 천렵을 즐겨하던 곳이다. 김상균은 여름철 이곳에서 천렵을 하는 청년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려고 이 정자를 건립했다고 한다. 아마도 주민들의 좋은 휴식처 및 소통의 공간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은산정(隱山亭)은 건립연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역사시대에서 근·현대로 계승된 정자문화의 일맥(一脈)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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