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에 대한 소고(小考)
양성평등에 대한 소고(小考)
  • 유영상 충북도 여성정책2팀장
  • 승인 2020.12.20 18: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린광장
유영상 충북도 여성정책2팀장
유영상 충북도 여성정책2팀장

 

자치연수원에 근무하면서 신규반 담임을 맡은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하여, 아니 엄밀히 말하면 대화에 끼기 위해 유행하는 신조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곤 했다. 하지만 신조어라고 해도 영어와 국어의 합성어이거나 글자모양을 보이는 대로 읽는 정도여서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번뜩한 아이디어가 오히려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중에 여성을 비하하는 쿵쾅이나 김여사, 맘충 남성을 혐오하는 한남충, 개저씨 등의 은어는 결코 귀여움으로 이해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이러한 남녀 혐오 은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경쟁사회에서 좁디좁은 자리에 대한 경쟁 때문인 걸까? 내가 차지하지 못하면 빼앗긴다는 두려움에 상대에게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붓는 것일까? 양성평등한 사회에서 나눠 가지면 될 것을 말이다. 물론 내 생각이다.

예전에 비해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많이 완화되었다. 오히려 여성 상위 시대가 아니냐는 말까지 종종 나온다. 그런 말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맞는 말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여성의 삶이 과거에 비해 크게 나아졌고 그 변화를 정서적으로 평등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다.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차별적 관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가사와 돌봄 또한 많은 부분이 여성의 몫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은 과거부터 고착된 차별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광고를 통해 엄마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아빠는 거실에서 아이들과 노는 모습이 아무렇지 않았다. 주사기를 든 간호사는 늘 여자였고 판사·변호사는 늘 남자였다. 집에서조차 아들은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 씩씩해야지”라는 말을 들어왔으며 딸은 늘 분홍색 옷만 입고 자랐을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여자·남자의 역할과 위치가 고정된 인식이 심어졌을 수 있다.

양성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지려면 남녀는 평등하다는 기본적인 인식개선부터 필요하다. 고착화된 성인의 인식개선보다 쉬운 방법은 어린 시절부터 양성평등 교육을 가정에서 일상화하는 것이다. 자라면서 성평등 의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었을 때 양성평등한 사회가 불편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성인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챙겨 듣길 추천한다. 가정교육을 담당하는 부모부터 성인지 감수성(성별 차이에 따른 불평등 상황을 인식하고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하는 감수성)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부모라며 `여자가 이래서 되겠니?', `남자는 이래야지'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양성평등한 사회는 상대가 잃어야만 얻어지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남녀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우리 사회가 이루어 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이젠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차별에 상처받고 뒤에서 눈물짓는 그런 모습은 과거 아련한 영화에서나 봄직한 장면이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