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감정이 찾아오면 자리를 내어주자
행복한 감정이 찾아오면 자리를 내어주자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0.12.1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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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첫 눈이 내렸다. 하얀 이불이 온 세상을 덮어 포근하다. 첫 눈을 타고 행복한 기억이 찾아와 온기를 선사한다. 크리스마스는 생일이나 기념일과는 다른 로맨틱한 기분을 동반한다. 종교가 없을 때도 성탄절이 다가오면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은 불빛을 머금은 전구처럼 따뜻함으로 가득했다. 내 부모님은 명절이나 생일이 되어도 감흥이 없는 분들이어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보통 때와 다르지 않았지만 나와 형제들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양말을 베개 옆에 두고 혹시나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긴 밤을 보내곤 했다. 결혼 후부터는 크리스마스를 내가 원하던 모습으로 디자인할 수 있었다. 트리를 만들고 전구와 초를 밝히고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고 선물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의 상상력에 내 어린 시절 가졌던 기대감을 더했다. 어느덧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지만 지금도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에 함께 하는 그림책이 있어 소개한다. 바로 글자 없는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레이먼드 브리그즈. 1978)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날 아침, 잠에서 깬 아이는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한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지만 눈사람을 혼자 두고 잠을 이룰 수 없던 아이에게 눈사람은 인사를 건넨다. 모두가 잠 든 고요한 밤, 눈사람 아저씨를 집으로 초대해 즐겁게 놀던 아이는 눈사람을 따라 마법 같은 여행을 한다. 눈 내리는 밤, 눈사람 아저씨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아이는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녹아 있는 눈사람을 발견한다. 눈사람 아저씨는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글자 없는 그림책은 대사 없는 영화로 표현됐는데, 영화 내내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은 우리를 눈사람과 아이의 여행에 초대한다. 우리 가족은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눈사람 아저씨를 함께 본다. 언제 보아도 따뜻하고 정겨운 눈사람 아저씨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된다.

유아기, 아동기에는 마술적 상상을 가지고 있다. 성장하면서 현실과 타협을 하며 꿈으로, 상상으로, 기억으로 자리 잡지만 이 시기의 마술적 상상력은 전 생애에 걸쳐 삶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창의적인 사람으로 창조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영원한 소년의 세상을 그린 동화 <피터 팬>은 작가 제임스 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성장하지 않는 아이들의 영원한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형의 죽음으로 관계에서 이중적 상실을 견뎌야 했던 제임스 배리가 자신에게 선물한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어른이 되지 않고 아이로 남고 싶어 하는 어른아이의 심리를 표현하는 증상에 `피터 팬 증후군'이라 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심리적인 안정과 휴식을 취할 공간이 늘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외출과 만남을 자제해야 하는 시기여서 이러한 심리적 공간을 외부에서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 우울은 `코로나19'와 `우울감'이 합쳐진 신조어로,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이 나타나는 상황을 말한다. 오늘 아침 코로나 뉴스브리핑에서는 코로나 우울을 겪고 있는 국민을 위해 심리지원을 확대하는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지금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심리적 어려움도 돌봐야 할 때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도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일상을 보내야 한다. 이러한 일상들은 새로 만들거나 계획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삶 순간순간 지나온 상황들, 예를 들면 창밖으로 내리는 첫 눈을 보며 운동장 위의 하얀 눈에 맨 처음 발을 내딛던 기억, 겨울밤 군고구마와 붕어빵으로 따뜻함을 나누었던 기억들이다. 행복이 오면 그냥 보내지 말고 자리를 내어줄 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내가 이미 가진 것으로 행복을 만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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