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가도(追憶街道)에서 세심(洗心)하다
추억가도(追憶街道)에서 세심(洗心)하다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0.12.1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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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 변호사의 以法傳心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곳곳에서 오르내리는 그 개혁의 순수성은 있는 것인지 권력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에서 오는 극도의 실망감은 필자에게 번민(煩悶)으로 돌아와 정처(定處)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것도 탐욕에서 오는 것인가 싶어 마음을 씻고 싶어집니다. 청주 남일에서 미원을 지나 19번 국도를 따라 보은에서 옥천, 영동으로 향합니다.

미원에서 보은으로 곧장 가는 길에서 빠져 옥화구경 중 옥화대와 천경대를 찾습니다.

법주사계곡으로부터 발원한 달천(達川)이 보은을 지나 특히 미원의 옥화구경에서 영월(寧越)의 동강(東江)과 같은 오지의 빼어난 풍광을 보여줍니다.

기암절벽과 옥빛 맑은 물에 감탄하다가도 그 고요한 풍경에 쓸쓸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미원의 끝마을 계원리에서 보은 산외의 외가를 가다가 꼭 지나게 되는 길은 상주 화북으로 가는 길목의 용화 일대입니다. 정감록,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공통하여 길지 또는 복지로 꼽히는 곳이 보은과 청천에 접한 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 청화산(靑華山) 자락에 이르는 지역입니다.

도계 지역의 오랜 갈등이었던 문장대온천 관광조성사업을 이해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청화산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밤티마을은 겨우 대여섯 가구만 남은 곳이지만 백악산(白岳山)과 신월천에 안겨 아주 아늑해 보입니다.

11월의 대낮에도 이 곳은 얼음의 계곡이지만 선명히 들어오는 묘봉과 문장대(文藏臺)의 경치는 기가 막힙니다.

재미있는 것은 밤티마을 넘어 상주 쪽의 속리산으로부터 흐르는 물길은 낙동강 수계가 되고, 마을 아래 신월천과 달천은 한강 수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세심하려 했더니 산 좋고 물 좋아 서재를 지으면 좋겠다는 탐욕을 안고 갑니다.

남부 3군을 잇는 19번 국도와 금강 지류를 따라가기 위해 다시 보은으로 되돌아가 접한 옥천 청성과 청산으로 갑니다.

금강의 큰 지류인 보청천(報靑川) 한 가운데 그림 같은 정자가 서 있습니다. 상춘정(賞春亭)입니다. 옥천이 고향인 정지용의 「향수」가 절로 생각납니다.

병풍처럼 산에 둘러싸이고 너른 들판에 보청천이라는 큰 물길까지 살기 좋은 곳 같습니다.

여기서 영동으로 가는 고개를 넘어 노근리 역사현장을 들릅니다. 한국전쟁 초기 미군에 의한 폭격으로 주민들이 다수 희생된 현장으로, 철교에는 당시 폭격에 의한 흔적들이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혈맹의 희생과 함께 아픈 역사를 마주합니다. 희생된 우리 선대들을 위해 묵념을 합니다.

영동-황간-추풍령을 잇는 4번 국도를 따라 김천에 닿을 수 있지만 제게 이 추억가도(追憶街道)의 끝은 늘 황간(黃澗)의 반야사(般若寺)입니다.

반야사 가는 지방도 초입의 월류봉(月留峰)의 절경과 전쟁도 피했을 백화산 첩첩산중의 천년고찰에서 어수선한 생각들을 씻어내기 좋습니다.

20대의 제 모든 것이 가난했을 시절 머물며 유유자적했던 때가 벌써 15년 전입니다.

삽살개 청산이와 놀며 새벽에는 맑은 물길에 수달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쏟아지는 별빛에 고요한 풍경이 그리워 지금도 계절마다 찾습니다.

다시 황간으로 나가 따뜻한 커피를 하나 사서 당시 좋아했던 음악들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장 가난했으면서도 풍요로웠던 시절을 추억합니다. 내일이면 탐욕과 번뇌가 또 쌓일지라도 제법 세심(洗心)된 것 같습니다.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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