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밤마실
겨울 밤마실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20.12.1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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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변정순 수필가
변정순 수필가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나의 어린 시절, 저녁을 먹고 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집 저 집으로 마실을 다녔다.

밤하늘에 겨울별이 총총해지고 어둠이 동네 골목으로 몰려오면 또래들은 동네 어귀로 슬슬 모여들었다.

오늘은 뉘 집에서 놀 것인가를 그 자리에서 정하여 몰려갔다. 낮에는 주로 밖에서 제기차기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썰매타기를 하였고 밤에는 윷놀이와 귀신놀이, 공기놀이, 실뜨기, 화투를 하며 놀았다.

놀이도구는 자연과 생활 주변에서 찾기도 하고 부모님이 직접 만드시면 거들기도 하였다. 놀잇감을 만드는 과정도 놀이의 하나였다.

긴 겨울밤 한참 놀고 나면 배고파서 밤참을 즐겨 먹었다. 그날 먹을 밤참은 그 집에서 먹을 것을 준비하였고 각자 조금씩 싸들고 온 것을 먹기도 하였다.

어떤 날은 화투를 쳐서 지는 팀이 밥 훔쳐오기도 하였고, 훔쳐온 밥을 화롯불에 얹어 김치, 고추장, 들기름을 넣고 비벼 먹기도 하였다. 냄비 바닥에 누른밥을 긁어먹는 맛은 그 어떤 맛과 비교할 수 없었다.

한번은 내기에 져서 친구와 짝을 지어 아랫집 계숙언니네로 밥 서리를 하러 갔다.

어린 가슴은 콩닥콩닥 망을 보는 친구를 뒤로하고 떨리는 손으로 가마솥 뚜껑을 여니 밥주발 하나가 들어 있었다.

들키면 큰일이니 머뭇거릴 새 없이 손을 재빠르게 움직여 밥을 쏟아야 하는데 가지고 간 양재기만 부뚜막에 부딪치는 바람에 소스라쳐 놀라 도망치고 말았다. 그날 밤은 임무완수를 하지 못해 밤참을 먹지 못했다.

“에구 달랑 밥 한 그릇 있는 것을 누가 가져 갔누?” “우리 집에 와서 달라고 하지 않구 딱해라” 군불을 때시는지 내 방문 창호지 문틈으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우리 말고 또 어느 팀이 일을 벌였단 말인가. 밤마다 마실 꾼은 몇 집에서 모여 노니 종잡을 수가 없음에도 잠결에 귀가 쫑긋했다.

뉘 집 내 집 할 것 없이 놀거리 먹거리가 거의 같았던 시절 밥 서리도 놀이 중 하나, 동무들과 어울려 마실 다녔던 겨울밤이 나의 정서의 척추였다.

요즘 세상은 아이들이 밤마실을 가기엔 사회적으로 무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어 친구 집 오가는 일과 모든 일을 부모의 허락을 받고 또 지정된 장소에서 놀 수밖에 없다. 지금은 밤마실을 주로 피시방과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은 전자기기가 발달함에 따라 보드게임, 컴퓨터 게임, 비디오게임, 스마트폰으로 놀이를 한다. 과학이 발달하여 새로운 놀이기구는 자꾸 생기고 외국놀이가 들어오니 당연히 아이들 놀이도 변할 수밖에 없겠다 싶다.

아이들 놀이가 변하는 것처럼 마실가는 일도 시대 변화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겨울밤 둘러앉아 우리가 즐겼던 놀이를 지금 애들이 시시하다고 말해도 나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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