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마스크의 사회학
코로나 시대, 마스크의 사회학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1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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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보름이 지나면 격동과 파란의 2020년이 지나간다. 올해 최대 최고의 이슈가 코로나19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바이러스의 침공으로 인해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감염병의 공포와 재앙을 겪고 있으며, 1년이 다 지나도록 아무도 그 끝을 알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인류가 그동안 단 한번 가보지 못한 세계, 경험하지 못한 피난의 역경을 거듭하는 와중에 나는 `마스크'를 가장 큰 현상적 변화로 여기고 있다.

`마스크'가 `일상화'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은 지금까지 누려왔던 인간의 모든 질서가 순식간에 달라지고 있고, 달라져야 한다는 강제적 역설에 해당한다. 그동안의 인류는 얼굴을 가리는 일에 대해 절대 긍정적이거나 우호적이지 않았다. 신분을 감추고 수작을 부리거나, 절대 권력이 자행할 수 있는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나약한 은폐의 도구에 불과했다.

그동안의 `마스크'는 혐오의 대상이었고 두려움을 자극하는 흉기이거나 음흉한 흉계의 시작, 또는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비겁함과 도덕적이지 못함 등 부정적 상징에 불과했다.

`마스크'의 현상은 성선설과 성악설 같은 동양적 대칭, `(인간은)원래 평화적인 종이었으나 사회에 의해 타락했다'는 루소적 견해와 `원래 폭력적인 종이었으나 사회에 의해 문명화되었다'는 홉스의 견해처럼 여전히 충돌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얼굴을 치장하면서, 꾸며진 얼굴로 의사소통하며 만물의 지배자로 당당했던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건 (그동안의 인간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당대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마스크로 시민의 얼굴을 가려 스스로의 얼굴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나라는 자신에게서 모든 정치적 층위를 지워버린 나라”라며 `마스크'를 비난하는 글을 발표해 감염병 재앙의 심각한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대중을 선동한다는 비난과 더불어 논란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19가 국가적 통제를 강화하고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등 국가주의의 회귀를 부추긴다는 걱정은 타당하다. 그러나 국가 또는 집단 등 인위적 경계를 뛰어넘어 맨얼굴로 자연을 철저하게 유린하며 지구를 못살게 군 인간 군상의 횡포와 오만함에 대한 경고라는 대승적 의미에 자유와 권리의 한계효용성은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겠는가.

“얼굴의 현현(顯現)은 윤리적 호소이다. 얼굴은 나에게 명령하는 힘으로 다가온다. 이 힘은 강자의 힘이 아니라 상처받을 가능성, 무저항에서 오는 힘.” 철학자 레비나스가 <타자의 얼굴>에서 한 말은 `마스크'에 대한 약자의 애틋함을 말한다.

우리는 그동안 `마스크'를 써야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가난하고 서러운 이들과 어떻게든 그 `마스크'를 벗겨내 저항의 의지를 무너뜨려야 하는 독재 권력의 서슬 사이의 치열한 도전을 얼마나 무시해 왔는가.

마침내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며 보편적 평등의 세상을 만끽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와 희생을 필요로 했는지도 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코로나19는 `마스크'에 대한 인간의 선택권을 단숨에 제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덕과 도덕을 뛰어넘어 `의무'가 되고 있다.

“내가 코로나19에 걸리는 건 무섭지 않은데, 내가 또 다른 누구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게 최선이겠다.”

처음 출전한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US오픈에서 우승한 한국의 김아림의 마스크 투혼에 외신들이 “기억에 남을 모습”이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경기 내내 마스크를 벗지 않고 홀컵을 공략하는 일이 그만큼 경이롭고 비상한 능력이라는 평가인 셈이다. 언제 어디서나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일. 그게 일상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특별한 일'로 여기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고, 써야만 하는'가난하고 억울한 이들과, 교만한 맨얼굴로 억압하던 사람들 사이에 엄존했던 차이와 지배를 던져 버리는 평등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함부로 떠들거나 자연을 유린하던 인류에게 `마스크'는 참회를 위한 묵언 수행의 일상.

`마스크'는 인류에게 철학이고, 당분간의 숙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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