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는 여자
자전거 타는 여자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0.12.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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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한쪽 눈을 지그시 뜬 채 이중창의 안쪽 창을 열고 선다. 얼굴에 스치는 선들바람의 상쾌함은 못다 깬 잠을 깨우느라 목덜미를 감싸고, 금세 바깥 창문이 뿌옇게 습이 차는 모양이 안갯속에 서 있는 기분이다. 오묘한 매력 때문에 습관적으로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곤 단풍잎처럼 손가락을 쫙 펴 의식을 치르는 양 반원을 그리며 유리창을 쓰윽 문지른다. 손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지는 냉기, 묘한 전율이 일며 손바닥이 지난 간 자리엔 햇볕이 파고들고 반원 끝엔 쪼르륵 물방울이 흘러내리며 골을 만든다. 한참을 창문에 손바닥을 대고 차가운 공기가 일순간 퍼지는 알싸한 느낌을 음미한다.

그 느낌이다. 자전거의 핸들을 잡았을 때의 그 차가운 느낌이다. 젊음이 소낙비처럼 훅 지나가 어느덧 중년을 넘어선 내가 늦가을부터 자전거 배우기에 한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헬스장도 수영장도 모두가 멈춘 도심, 궁리 끝에 늦깎이로 남들 다 잘 타는 자전거 타기 도전을 했다. 자전거엔 멈출 수 없는 마력 같은 끌림이 있다. 자전거 안장을 최대한으로 낮춰 발이 땅에 닿게 한 후, 안전모를 꾹 눌러쓰고 어렵사리 땅에서 발을 떼 페달을 밟으면 흔들흔들 갈지자로 달린다. 잡아주는 이 없이 걸음마 떼는 아이처럼 갈지자로 달리다 보면 어느 듯 직진으로 겨우 달린다. 늘 출발이 난코스다 보니 몇 번을 흔들흔들하다 간신히 출발을 하면 멈추지도 못하고 앞으로만 달린다. 혹여나 맞은편에서 누구라도 만나기라도 하면 이 겨울에 등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가까스로 피한 건지 상대방이 피해 간 건지는 모르지만, 찰나에 안도의 한숨이 이어진다.

언뜻 보기에 자전거 배우기가 쉬워 보였는데 만만치가 않았다. 넘어지지 않으려 얼마나 온몸에 힘이 들어갔는지 아침이면 어깻죽지며 손가락이며 다리까지 온몸이 쑤시는 것이 대단한 일을 한 듯 천근만근이다. 그러면서도 매일 일기예보에 관심이 쏠린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터인가 뻐근하게 부어 있는 손, 이른 아침에 창문에 손을 대고 있으면 밤새 내린 찬 공기로 냉각된 유리창은 뻑적지근한 손을 부드럽게 해 준다. 그 느낌 때문에 아침이면 창문을 열고 습기를 닦는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바깥 창문까지 열어젖히자 소음과 동시에 코끝이 시린 겨울바람이 착 안기는 이 느낌, 이른 아침에 맛보는 이 느낌의 매력에 홀려 습관처럼 눈을 뜨면서 절로 창가로 향한다.

여전히 퉁퉁 부어 있는 손, 게다가 약손가락이 생인손을 앓는 중이라 컨디션조차 엉망이다. 약손가락은 쓰일 곳이 없어 무명지(無名指)라 한다는데 어쩌다 생인손을 스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자지러지는 고통, 괜스레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면서 쭈뼛쭈뼛 추운 날씨 탓을 하며 머뭇거렸다. 하기 싫은 일엔 핑계가 보이고,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인다더니 은근슬쩍 귀찮아 요즘은 핑곗거리를 찾기가 일쑤다. 그러면서도 어느새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나다. 습관이 무섭다고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일상에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이젠 자전거 안장과 핸들도 한 뼘이나 높였다. 제법 직선코스는 물론 어설프지만 넓은 원을 그리며 코너링도 자연스럽다. 운동장 몇 바퀴를 스피드 내면서 돌 수도 있고 한결 부드럽게 출발도 할 수 있을 만큼 능숙해졌다.

뿌옇게 손바닥이 지나간 유리창이 엷어지면서 햇살이 쏟아진다. 시작이 반이라고 조만간 늘 걷던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주변 풍광을 눈에 담고, 고독을 즐기면서 사색에 잠기며 자전거를 타지 않을까. 제아무리 코로나로 세상이 혼란스럽고 가혹해도 모두 모두가 기다리는 봄이 오는 것처럼. 그렇게 봄이면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조금은 더디고 느릿하지만, 자연을 맛보며 라이딩(riding)을 만끽하는 내 모습도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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