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으로의 여행
내 안으로의 여행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20.12.1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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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그대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도 아닌데, 그대가 멀어진 것도 아닌데, 조금 비낀 시선 하나로, 온 세상 이렇게 추워지다니'

앙상한 가지가 빼곡한 능선 위에 창백한 겨울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산길을 따라 한 해의 끝자락으로 들어갑니다. 부쩍 커 보이는 나무들이 가만히 눈을 감고 합장한 채 경건하게 서 있는 회색빛 수도승 같습니다. 참 춥겠습니다. 겨울은 이제 시작일 뿐이고 더 춥고 칼바람 부는 날도 있을 텐데, 오늘은 그런대로 온화한 겨울의 한 날인데 생각하며 나는 스며드는 한기를 떨치려고 발길을 재촉합니다.

딱딱, 마른 고요를 깨며 울리는 소리에 멈추어 가만히 귀 기울여 봅니다. 살펴보니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부리 방아를 찧고 있습니다. 동면에 든 나무의 단단한 껍질 안에 수많은 생명이 함께 있다니 나무는 자체로 생명이기도 하고 다른 생명의 집이기도 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 자리에서 나름대로 운명지어진 속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겨울 코로나가 발생하고 곳곳으로 퍼져가고 있는 중에도 앙상한 가지에 꽃이 피고 싹이 나와 봄을 알리고 여름이 짙어지고 가을이 깊어져 또다시 겨울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세계인이 반응하고 대처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며 이 상황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얼마나 알아채기 어려웠던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도 모릅니다. 우리는 미래가 현재에 왔을 때조차도 그 모습을 정확히 보기 어렵습니다. 현재가 과거가 된 이후에야 그 일의 정체를 조금 알아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음에도 현재에 발생한 일은 매번 처음 맞닥뜨리는 사건입니다.

저도 한 해 동안 계속 우왕좌왕했습니다. 6월 3일,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하던 첫날, 학생들이 학교에 왔다는 것만으로 감격스러우면서도 수업 내내 마스크 안이 축축해지고 어떤 학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파악되지 않아 불편했습니다. 예전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붙잡고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이제 마스크를 쓰고 수업하는 학생들 모습을 보며 안쓰럽게 생각되기보다 동지애가 느껴집니다. 코로나의 위협에도 서로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며 우리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하는 수업, 회의와 연수, 공연과 전시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앞으로의 변화가 궁금하고 기대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와 세계의 코로나 확진자 숫자를 다이어리에 적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찾아보면 다 나오는 걸 무슨 쓸데없는 수고를 하는가 할지도 모르지만 직접 숫자를 기록하는 것은 이 상황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파악하고 더욱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나란히 가고자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바이러스가 물이 스미듯 공기가 스미듯 세계 곳곳, 생활 곳곳으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점점 커지는 숫자에서 더욱 깊이 겸허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엄격하게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자연은 보상도 형벌도 없이 그저 결과를 줄 뿐이다. (로버트 그린 잉거솔)'

자연이 인류에게 벌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태양이 항상 그 거리에서 같은 주기로 운행하는 것처럼, 나무가 거기 그대로 서서 계절을 맞이하고 겪어내며 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자연은 제 갈 길을 갑니다. 바이러스조차 제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겠지요.

오늘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대신 숲길을 걸으며 겨울을 만났습니다. 한없이 작아져서 자연의 사소한 일부가 되어봅니다. 거대한 우주의 순박한 여행자가 되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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