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眞正)한
진정(眞正)한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0.12.1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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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아홉수를 보름 정도 남겨놨다. 이제 곧 공자께서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말씀하신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는 나이가 된다. 언젠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내 인생 드라마) 여자 주인공 이지안이 자신은 빨리 늙고 싶다는 고백을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 지금보단 덜 힘들 것 같다는 이유에서이다.

실은 나도 그렇다. 그렇다고 나만 겪는 아픔은 아니었고 살아가면서 누군가는 겪을 일을 겪었을 뿐이다. 그리고 드디어 한 달여만 있으면 나는 바야흐로 오십이 된다. 물론 기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지천명을 앞에 두고 `진정한 오십 대'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이 종종 생긴다. 사십 대가 되면 마음의 소용돌이가 좀 잠잠해 질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뭔가 바뀌지 않았다. 그냥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살다 보니 동경은 사라지고 치열한 삶이 전부였던 것 같다. 이제 오십도 그렇게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는 결의?까지 생기는 요즘 `진정한 일곱 살'이란 그림책이 떠오른다. 허은미가 쓰고 오정택이 그린 그림책은 딱 일곱 살의 시선에서 `진정(眞正)'한 의미를 담아냈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일곱 살은 어떤 모습인가. 대충 크레파스로 휘갈긴 듯 그린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인생은 별거 아니야,'그냥 휘갈기듯이 때맞게, 혹은 늦게라도 내게 맞는 것을 하면 된다고 그림책이 말을 건다. 허은미 작가가 말하는 진정한 일곱 살은 일단 이가 하나 빠져야 한다. 채소도 가리지 않고 먹으며 애완동물을 돌볼 줄 알고 마음이 통하는 단짝 친구가 있으며 양보도 할 줄 안다고 말한다. 특히 일곱 살이 되면 어른도 실수를 한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 문득, 오래전에 읽은 책 제목이 생각난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모든 것이 명료해 보이던 그럴 때가 좋았다며 친구들끼리 나눠 읽고 `난 유치원 안 다녀서 그런 거 모른다'고 히죽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아이나 어른이나 삶을 살아가며 채우는 방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머리가 크면서 많은 꼼수와 번민 속에 정작 중요하고 단순한 것을 잃고 사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일곱 살이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혼자 잠들기'이다. 당신은 혼자 잠들기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뭐라고 하고 싶은가, 일곱 살의 엄마는 `괜찮아, 진정한 일곱 살이 아니면 진정한 여덟 살이 되면 되고, 진정한 여덟 살이 안 되면 진정한 아홉 살이 되면 되고, 진정한 아홉 살이 안 되면 진정한 열 살이 되면 되니까'라고 시원하게 위로한다.

예전보다 확실히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뭐든 잘하고 싶어 안달하고 조급해하는 내 모습도 관조하며 추스를 수도 있다. 지천명이 되어 딱, 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예전보다 조금만 더 깊어지고, 조금 더 편안해지고, 조금 더 너그러워지길 바란다. 이 훈련 또한 긴 여정이 될 것이고 그림책 속의 일곱 살처럼 잘하지 못해도 다음 기회가 있다고 여유롭게 생각하기로 했다.

진정(眞正)한 지천명에 대한 고민은 살아가면서 계속될 것이다. 흔하게 나잇값을 하자거나, 오십쯤 되면 사회에서 이 정도는 돼야지 하는 프레임에 나를 가두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다. 문득, 그림책의 주인공처럼 뭔가 어설퍼서 누군가의 도움과 조언을 받아들이고 곁을 내어주는 친구를 더 사귀어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아무튼, 나의 내년과 그 후의 십 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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