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 한번 해 주세요
조율 한번 해 주세요
  • 장홍훈 양업고 교장·신부
  • 승인 2020.12.1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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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장홍훈 양업고 교장·신부
장홍훈 양업고 교장·신부

 

“아니! 네가 벌써 3학년 졸업반이야? 양업고에 입학한 게 어제인 것 같은데”

“아~아~ 그러게요. 시간이 야속하네요.”

“행복하게 잘 지내냐?”

“글쎄요. 답답하네요. 이렇게 가슴을 치면 좀 나으려나?”

“너, 코로나 블루(Corona blue)에 걸렸구나!”

“예, 야속한 코로나19가 저를 우울하게,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가슴을 주먹으로 치니. 빨리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나왔으면 좋겠다.”



2020년도 마지막 달이고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는 친구를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고민에 빠져본다.

혹자는 말한다. 이 코로나 정국에 하느님이 어디에 있냐고, 잠자고 있는 하느님은 믿지 않겠노라고. 그렇다. 후안 아리아스도 말했다. 잠자는 하느님을 결코 믿지 않는고. “나약이라는 죄악 안에 인간을 붙들어 매 놓는 하느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울먹이며 말하는 정직하고 신실한 한 인간이 시달리고 있는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주지 못하는 하느님. 물질을 죄악시하는 하느님. 고통을 사랑하는 하느님. 인간의 기쁨을 시기하여 중단시키는 하느님. 인간의 이성을 빈약하게 만드는 하느님. 카인의 새 후예를 계속 축복하는 하느님. 마술사와 요술쟁이인 하느님. 온갖 절망 속에서 내가 희망할 수 없는 하느님을 나는 믿지 않는다.”

천주교에서는 미사 때마다 고백의 기도를 바친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한다. 이 `탓'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가슴을 친다.

가슴을 치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이 주먹을 쥐고 제 가슴을 친다는 것은 내면세계의 대문을 두드려 열어젖히는 동작이다. 내면은 마땅히 생명과 빛과 활력이 가득한 터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가슴속은 어떤 상태인가? 온갖 의무·고충·결단 등 절박한 요구들로 가득 차 있다.

또 삶의 한가운데에서 죄와 죽음에 둘러싸여 있지만 별로 실감이 안 난다. 이런 상황에서 `깨어나라', `네 사정을 살펴라', `정신 차려라', `마음을 돌려라'. `참회하라.'라고 가슴을 치는 것이다. 자신을 쳐서, 하느님 편에 서서 자신을 벌한다. 한마디로 성찰과 회개에의 촉구이다. 회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메타노이아는 `(새롭게) 생각을(행위까지) 바꾸다.'라는 어원을 지니고 있다. 개선과 전환은 새로운 생각에서 시작된다. 생각을 바꾸어야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 진정한 삶을 향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이 한 해의 끝자락에서 박노해 시인의 `길'을 읽어보며 삶의 위안을 삼아본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잃지 마라/믿음을 잃지 마라/ 걸어라/ 너만의 길로 걸어 가라/ 길을 잃으면 길이 찾아온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그랬더니 또 평소 좋아하는 `조율'(작사· 작곡 한돌, 노래 한영애)이란 노래의 후렴이 흥얼거려진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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