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간격
그리움의 간격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0.12.1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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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괴물의 출몰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냄새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괴이한 놈이다. 형체 없이 떠돌아다니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한다.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듯이 서로 간에 전염을 시킨다.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려니 하는 설마 하던 마음을 싹 쓸어간 불안에 떨게 만드는 코로나19다.

잠잠해지던 녀석이 12월 들어 횡포가 더 심해지기 시작한다. 느슨해지던 모임에 또다시 급제동이 걸려 사람과의 만남을 끊어 놓는다. 어디에서나 사람과의 거리두기 2m를 지키라고 한다.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누구를 만나기도 무섭다. 사람과의 전파로 하여 외출을 하지 못하니 다들 갑갑증으로 힘들어한다.

2m는 건강거리의 기준이다. 이는 1930년대 폐결핵 연구가 활발하던 당시 사람의 침방울이 중력에 의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거리를 발견했다. 비말입자가 크더라도 중력이 작용해 보통 2m 이내에 땅에 떨어진다고 해서 안전한 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2m의 공간적 거리를 나라마다 다르게 표현한 그래픽을 보았다. 프랑스에서는 바게트 3개로, 핀란드는 어린 무스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또 스웨덴은 세계적 기업 이케아의 암체어 2개, 체코는 아이스스틱의 길이 만큼으로 나타내고 크로아티아는 넥타이 3개로 디자인한 모습은 그 나라의 상징들을 보여준다,

길게 극성을 부리는 코로나19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보지 않던 책을 본다는 이도 있고 뜨개질을 하는 이들도 늘어난다. 아이들을 위해 집안에 놀이방을 꾸며주기도 하고 근사한 카페를 연출하는 이들도 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괴물과 투쟁 중이다. 혼자서는 소용없음을 알기에 같이 노력중인 것이다.

이 같은 거리두기로 사람들의 선이 분명해지는 것 같다. 어정쩡하던 사이가 또렷해지고 지저분하게 널려 있던 연(緣)줄이 끊겨져 나간다. 얽힌 감정들도 함께 쌈박해진다. 더구나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해 그윽해지기도 한다. 내 눈에 비춰진 2m엔 피어나는 그리움이 보인다. 가끔은 사람과의 관계도 정리가 필요한 법임을 말해주고 있다.

사람끼리 더 애틋해지기도, 멀어지기도 하는 거리감이다. 가깝던 사람이 서먹서먹해지고 멀리 있던 사람이 가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생각이 깊어지고 오랜 기억을 소환시킨다. 속을 살살 헤집고 걸린 꼬투리를 끄집어내자 줄줄이 감자알이 나오듯 딸려 나온다. 오랜 시간에 덮여 있던 알음모름한 지난 일들이 잊힌 사람들과 함께 내게로 온다.

불현듯 울컥 울음통이 솟는다. 그냥 모르는 척 지나치려 해도 자란자란 차올라 목울대에 걸린다. 느닷없이 쳐들어오는 이 공격의 정체는 무엇인고. 아리아리하게 입속에서 남아 맴도는 매운 맛이 톡 쏘아대는 겨자를 닮아있다. 이렇게 오랜 그리움이 다문다문 오고 있다.

지나간 시간들은 다 아쉬운 법이다. 이제껏 등 뒤에 숨어있던 그리움이 나이만큼 내게로 온다. 저마다 그 간격이 보인다. 팔을 뻗으면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 가까운 사이에는 멀지만 데면데면한 이들에게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 훤히 바라다보이는, 상대의 얼굴에 티가 흐려져 더 예뻐 보이는 거리. 2m.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간각(間刻)이다.

서로가 잘 보이지만 터치할 수 없고 소원해 질 수 없는 거리. 그래서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거리인 그만큼의 간격을 이참에 그리움의 간격이라 말하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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