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사찰이 별것 아니라고?
판사사찰이 별것 아니라고?
  • 오영근 기자
  • 승인 2020.12.1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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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오영근 선임기자
오영근 선임기자

 

오래전 법조를 담당하던 시절, 청주지검에 친하게 지내던 동년배의 특수부 검사가 있었다.

그의 방에서는 지역에 이슈가 되는 굵직한 수사가 종종 이뤄져 출입기자들을 긴장시키곤 했다.

그런 그의 방에는 `로얄 살루트'라는 고급 위스키가 늘 준비돼 있었다. 물론 그가 마시는 술은 아니었다. 그가 구속 직전 피의자들에게 한 잔 따라 주려고 준비해 놓은 술이었다.

“○○○씨! 고생하쇼~.” 구속영장이 발부된 피의자에게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따라주는 위스키 한 잔. 주저주저하다 마지못해 그 술을 받아 든 피의자의 주눅이 든 모습은 지금까지도 생경하다.

그는 스스로 그 술을 `구속주'라고 이름 지었다. 그는 왜 구속주를 준비했을까.

검사에 앞서 인간적 미안함으로 피의자를 위로하려고? 물론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을 테다. 하지만 그보다는 명쾌한 수사를 통해 피의자를 구속했다는 성취감의 발로 아닐까 라는 게 그때 느낌이었다.

검사는 불구속보다 구속을 좋아한다. 기소한 피고인에게 구형량 이상의 중형이 내려지는 것을 더 바란다.

양형기준상 집행유예가 뻔한 혐의에도 무조건 실형을 구형하는 게 대한민국 검찰인 것을 보면 분명 그렇다. 검사에게 구속과 유죄의 중형은 실적이자 능력 평가의 잣대인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어제부터 이어지고 있다. 징계심의의 핵심내용은 불법 판사사찰 의혹이다.

추미애 장관의 법무부는 이를 범죄행위로 보고 징계회부는 물론 대검 감찰부 수사까지 의뢰했다.

윤 총장 측은 일본의 법조사례까지 제시하며 사찰을 극구 부인한다. 갖은 법리를 동원해 추 장관에 맞대응이다.

직무배제에서 징계위 회부, 헌법소원, 수사의뢰 등 복잡하게 이어지는 秋-尹 대립의 끝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여기선 논외로 둔다. 절차적 정당성이니 공정성이니 적법성이니, 법을 잘 아는 그들끼리 모순(矛盾)으로 다투다 승패를 가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법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불편한 게 있다.

검찰의 판사사찰, 검찰 말대로 좀 더 순화해 판사 성향파악이라 해두자. 이 점은 정말 쉽게 납득되질 않는다. 흔히 판사에 대한 성향파악은 소를 제기한 검찰보다는 피고인 쪽에 어울리는 행위다.

피고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형량을 좌지우지할 판사가 어떤 성향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고향과 출신학교가 어디인지, 누구랑 친한지, 또 형량은 센지 등 피고인 입장에서는 온통 궁금 투성이다.

비싼 돈 주고 변호사 선임해 법리를 따지기 전 판사 인맥과 학맥 먼저 알아보는 게 피고인 입장이다.

가급적 지은 죄보다 가벼운 형량을 받고 싶은 게 본능이니 이를 탓할 순 없다.

하지만 검찰의 판사 성향파악은 좀 다르다. 엿보이는 속내부터가 그렇다. 재판을 검찰 의도대로 끌고 가고 싶다는 속내 말이다. 더구나 그 의도에 조국 전 법무장관 재판처럼 정치적 속내가 깔려있다면 더 심각한 일이다.

재판이 법에 따라 공정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판사나 검사나 증거와 법에 따라 재판에 임해야 한다. 피고인도 혐의대로 법에 따라 공정히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 그게 법치주의다.

그런데 검찰이 판사의 성향을 이용해 재판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그 재판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

그래서 어떤 피고인이 지은 죄보다 더 높은 형량을 받았다면 그게 검찰의 법치요, 정의일까.

판사사찰, 아니 판사성향파악. 과연 누굴 위한 것일까. 판사? 피고인? 절대 아니다. 오로지 검찰을 위한 거였다.

“공판에 참여하는 검사들을 지도하기 위해 업무참고용으로 작성한 문건일 뿐이다.”

판사사찰의혹에 해당 문건까지 공개하며 “별것 아니라”항변하는 윤 총장 측 주장에 가벼움이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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