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
세한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12.0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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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신미선 수필가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참으로 무정한 것이 세월이다.

세상에 역병이 돌아 난리가 나서, 모든 것이 멈추었건만 세월만은 막무가내로 멈추지 않고 내달리더니, 기어코 멈춘 사람들을 또 세모(歲暮)에 데려다 놓았다.

이 즈음이 되면 꽃은 물론이고 이파리마저도 모두 사라져 세상은 무채색의 쓸쓸함으로 뒤덮이곤 한다.

그런데 이 시절에 유독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있으니 소나무가 그것이다.

송(宋)의 시인 소옹(邵雍)은 날이 추워지고 나서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에 대한 예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세한(歲寒)

松柏立冬靑(송백입동청)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입동 날에 푸르게 되니
方能見歲寒(방능견세한) 바야흐로 한겨울에도 볼 수 있네
聲順風裏聽(성순풍리청) 소리는 바람 속을 좇아 들리고
色更雪中看(색경설중간) 빛깔은 눈 속을 지나 보이네
虎嘯風生壑(호소풍생학) 범이 울부짖으니 바람이 골에 생기고
龍藏氣吐雲(용장기토운) 용이 숨으니 기운은 구름을 토해내네
草廬勿高臥(초려물고와) 초가집에 숨어 있지 마시게나
天地正絪縕(천지정인온) 천지는 다만 왕성할 뿐이니

절기상으로 겨울은 입동(立冬)부터이다. 이때가 되면 초목은 모두 시들어지고 말지만, 송백(松栢)만은 예외이다.

도리어 입동을 기다려 푸름을 드러낸다.

여름엔 다른 초목의 푸름에 숨어서 나타나지 않던 그 푸름 말이다.

겨울이 초입을 지나 절정에 이르러도 송백은 푸른 빛을 잃지 않는다. 겨울이 제철인 송백은 그 소리도 찬바람과 궁합이 맞고, 그 빛깔도 흰 눈과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범이 울부짖으면 골짜기에 바람이 일어나고 용이 숨어들면 기운이 구름을 토해내는데, 이것이 바로 송백의 기세이다.

그러니 겨울이라고 초라한 집에서 은거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천지는 겨울에도 왕성한 기운을 송백을 통해 내뿜고 있으니 말이다.

겨울은 결코 무채색의 계절이 아니다.

송백의 푸르름은 오히려 겨울에 빛을 발하니, 이들의 빛만으로도 겨울은 이미 풍요롭다. 여기에 겨울의 진객인 새하얀 눈이 그 배경 노릇을 해준다면 그 정취는 봄꽃이나 가을 단풍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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