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늘그막 자연과 벗하며 신선을 꿈꿨던 노옹(翁)의 정자, 괴산 일가정(一可亭)
인생 늘그막 자연과 벗하며 신선을 꿈꿨던 노옹(翁)의 정자, 괴산 일가정(一可亭)
  • 김형래 강동대 교수
  • 승인 2020.12.06 1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시선-땅과 사람들
괴산 일가정 전경.
괴산 일가정 전경.

 

일가정(一可亭)은 연풍면 유하리(柳下里) 마을 입구 층암절벽 위에 동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유하리는 본래 연풍군 현내면에 속한 지역으로, 마을 중심에는 유하천이 흘러 유하교 근처에서 쌍천(雙川)에 합류한다. 마을 이름은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다 하여 버들미라 불렀는데, 위쪽 마을은 웃버들미(柳上里), 아래쪽 마을은 아래버들미(柳下里)라 불리던 데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초기 청주 경씨(淸州 慶氏)가 양지쪽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임진왜란 후 지금의 마을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일가정(一可亭)은 조선 고종 때 북부도사(北部都事)와 평안북도 희천군수를 지낸 경광국(慶光國 1841~1923)이 1913년 향리로 돌아와서 지은 정자이다. 경광국은 김옥균·박영효·서재필 등 개화파와 친분이 두터웠다.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정변의 관리자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 1894년 풀려난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가 7년 만에 귀국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상소를 올려 조약의 부당성을 주장하였고, 을사오적(乙巳五賊)의 매국행위를 논박(論駁)하였다. 말년에는 고향인 연풍 유하리에서 여생을 보냈다.

경광국은 관직 재임 시절 선정(善政)보다는 악정(惡政)을 펼친 포악한 수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1896년 4월 6일 고종실록에는 전부호군(前副護軍) 서응선(徐應璇)이 희천군수 경광국을 고발하는 상소문이 실려 있다. `남의 재물을 약탈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을 능사로 여긴다'며 죄상을 나열하고는 `2000금을 포학하게 거두어 만인산(萬人傘)을 억지로 수놓게 하니 원망하는 소리가 길에 가득 찼다. 이와 같은 무리들이 벼슬자리에 오래 앉아 있게 된다면 고을이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한탄했다.

일가정(一可亭)은 자연 암반 위에 지어진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뒤로는 울창한 송림이 에워싸고, 냇가를 바라보는 정면은 깎아진 절벽이다. 냇가 너머로는 들판이 펼쳐져 자연경관이 수려한 편이다. 정자 안에는 경광국(慶光國)이 지은 `일가정 자서(一可亭 自序)'와 `일가정(一可亭)'시 한수가 판각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분실되었다. 정자 아래 암벽에는 일가정과 경광국 등 여러 가지 글씨 각자와 연풍현감(延豊縣監)을 지낸 현감들의 마애비 3기가 자리하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유산동문(柳山洞門)이라 새겨진 각자(刻字)이다. 옛 선인들은 `산수가 수려하고 경치가 빼어나 신선이 사는 곳'을 `동천(洞天)'이라 하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동문(洞門)'이라고 했다. 아마도 경광국은 말년에 풍진세상(風塵世上)을 등지고 고향으로 돌아와 일가정(一可亭)을 짓고 산수를 벗하여 선비들과 시(詩)를 즐기면서 감회(感懷)가 새로웠을 것이다. 늘그막에 전원에서 한가로이 은일한 정취를 즐기며 고향이 평화롭고 조용하며 살기 좋은 이상향이라 느꼈던 것 같다.

경광국(慶光國)은 정자 주위 풍광을 팔경(八景)으로 정하니, ① 구층(九層)의 절벽 ② 삼통(三通)의 큰길 ③ 오수(午水) 고기잡이 불 ④ 정강(丁崗)의 나무꾼 피리소리 ⑤ 유도(柳島)의 아침 연기 ⑥미산(米山)의 저녁노을 ⑦ 일촌(一村)의 꽃나무 ⑧ 소점(小店)의 주막 깃발 등이다. 그는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중국 소상팔경(瀟湘八景)이나 젊어서 유람한 관동팔경(關東八景)보다 빼어나다고 했다. 소상팔경은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사대부의 정신적인 고향이자 로망이었다.

김형래 강동대 교수
김형래 강동대 교수

 

경광국(慶光國)이 지은 `일가정 자서(一可亭 自序)'에는 관복을 입고 표연히 앉아 마치 우화등선(羽化登仙)처럼 인간의 시비와 성패를 모두 물소리에 흘려보내고 거문고를 끼고 시를 길게 읊으며 해 지도록 노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았다고 한다.

일가정(一可亭)에 오르면 신선처럼 살고 싶어 하는 정자 주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