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존재하는 죽음 본능
우리 안에 존재하는 죽음 본능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0.12.0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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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며칠 전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응급실에 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일상을 모두 멈추게 만든다. 진통제를 투여하고 잠시 안정을 취했을 때 “그동안 쭉 나는 네 곁에 있었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함께 있을게(볼프 에를부르흐. 2007)'는 삶과 죽음에 관한 자연적인 순리를 직접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서사로 통찰에 이르도록 안내하는 그림책이다.

작가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위해 10여 년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죽음을 소재로 이야기를 푼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도 하고 이미 출간된 책들이 노인과 병을 연관시키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오리, 죽음 그리고 튤립이다. 번역된 제목이 주는 느낌과 사뭇 다르다.

주인공 오리는 얼마 전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 누구야? 왜 내 뒤를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거야?” “와, 드디어 내가 있는 걸 알아차렸구나. 나는 죽음이야.” 죽음은 만일을 대비해서 그동안 쭉 오리 곁에 있었다고 말한다. 죽음이 곁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오리는 당황한다. 사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은 생명이 있고 없음을 뜻하는 반대어지만 두 단어는 대극에 있지만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고 분리할 수 없다. 두 단어는 낮과 밤, 손등과 손바닥처럼 하나이다.

인간의 모든 본능은 이전 상태를 회복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에게는 살고자 하는 욕구만큼 죽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했다. 그는 죽음의 본능은 현재 상태를 해체하며 퇴행을 통해 이전의 존재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개체의 생명과정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며 인간의 삶 또한 생명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했다. 이처럼 죽음은 인간 기질의 일부로써 존재 안에 늘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죽음을 일상에서 의식하며 생활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생명의 유한함을 알면서도 노년이 되어서 또는 병을 얻어서 또는 연일 보도되는 사건뉴스에서 잠시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당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 보존의 본능에 충실하다. 자기 보존 본능을 가진 인간은 자기 방식대로 살다가 죽음에 이르기를 바란다. 그러니 죽음을 직면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사고와는 낯선 사고라 할 수 있겠다. 낯선 것은 불편할 수 있고 저항을 불러올 수 있지만 이전과는 다른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본능에 대한 수용은 또 다른 에너지를 경험하는 일이다.

내가 상담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좀 더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죽음을 대면한 후였다. 병이 나고 치료하는 과정은 슬프고 우울했으며 부정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절망하기 보다는 죽음이 내 삶의 일부이며 언제고 내게 말 걸어올 수 있는 것임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은 평안해졌으며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 많은 정신분석가들은 죽음의 본능이라는 말 대신에 공격적 본능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데, 나는 이 말이 죽고자 하는 이들에게 죽을힘으로 살아 내라고 하는 말과 상통한다고 본다. 자신에게로 향한 공격적 본능을 삶으로 전환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삶의 태도를 갖게 될 것이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삶 본능과 죽음 본능은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늘 함께하며 이 두 본능은 삶의 유지와 발달에 똑같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삶에 끼어든 낯선 손님이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당황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삶의 가치를 더 부각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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