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구경
싸움 구경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12.0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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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오래전 시골에 살 때, 건너 동네에서 싸움이 났다. 좁은 길에서 교행을 하다가 시비가 붙었다. 싸움의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옳고 그름의 문제는 멀찌감치 떠났고 왜 반말이야? 나이만 먹으면 다야? 어린 것이 버릇없이. 이러면서 감정싸움으로 접어들어서 격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집 앞에서 싸움 구경을 한참 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와서 등짝을 때린다. 왜 때려? 싸움이 났으면 나를 불러서 같이 구경을 해야지, 의리 없이 혼자서 구경해?

집사람이 학교에 태워다 준다. 거의 다 왔는데 갑자기 시끄럽다. 어딘가 불이 났는지 불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차들이 한옆으로 비켜선다. 집사람이 갑자기 기수를 돌려서 불자동차를 따라간다. 학교에 다 왔는데 거꾸로 가면 어떻게 해? 아직 시간이 있잖아 얼마 멀지 않은 것 같으니 불구경하고 가자.

싸움 구경과 불구경만큼 재미있는 건 없다고 한다. 나이 든 사람만 만나서 그런지 싸움 구경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권력 주변에서는 싸움이 그치질 않는다. 싸움도 수준 높게 하면 볼만하지만 이전투구의 싸움은 하는 사람들도 한심하고 보는 사람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권력층들이 싸울 때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다. 누가 한 말일까? 명대변인이었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한 말이다. 그 후 정치인들은 새로운 말을 만들지 못하고 이를 입버릇처럼 되뇐다. 좀 만들어 쓰지. `보라매공원 집회에 보람 없고, 여의도 집회 여의치 않고, 부산 집회에 부산만 떨었다.'라고 비판하면 듣는 사람도 말 하나는 기막히게 만든다고 인정을 할 것 같다. 이런 사람이 검사출신이었단다. 박희태와 쌍벽을 이루던 명대변인 박상천도 검사 출신이다. 살벌한 정치 상황 속에서 논리와 유머의 대결은 볼만했다. 이렇게 싸우면 오죽 좋아?

법무부 장관과 검찰 총장이 한 판 붙었다. 법무부 장관 아들을 걸고넘어져서 법무부 장관 흠집 내기를 하다가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이번에는 법무부 장관이 정면으로 검찰총장을 치받아 전면전에 돌입한 형국이다. 야당 원내대표가 하는 말, “법무부 장관, 광인(狂人) 전략인지, 광인인지 헛갈려”이건 대놓고 욕을 하는 것과 같다. 법무부 장관이 여자이니 사람(人)을 여자(女)로 바꾸면 미친 X이라고 욕하는 것이다. 치졸하고 격이 없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권력들이다. 최고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붙었다.

두 사람이 싸우는 줄 알았는데 한 여자와 검찰의 싸움이 됐다. 지금의 법무장관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싸움을 벌일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여야를 통틀어서 이렇게 막무가내의 싸움을 벌일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오직 지금의 법무장관만이 이런 싸움을 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추다르크일까? 추키오테일까?

검찰 구성원 모두가 법무부 장관의 직무배제 조치와 징계청구가 위법이고 부당하다고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직무배제조치는 정지가 되었지만 법무장관은 징계위원회를 열 것 같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한다. 검찰총장은 한 번도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말로 들린다.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고, 또 법무장관이 밀어붙일 것이기에 징계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본다.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던 검찰 수장의 목에 칼을 들이댄 것이니 검찰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합리성을 결여한 광인이라는 욕을 들어가면서 한 사람이 검찰 전체를 대상으로 싸우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온 검사 집단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이기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이 있다. 이 싸움이 계속되면 될수록 정치권은 뒷전에 물러나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나처럼 싸움 구경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을까?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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