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수능과 능력주의
코로나19 시대 수능과 능력주의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0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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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해마다 거를 수 없는 나라의 큰일, 수능을 하루 앞두고 있다. 이번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재앙의 한복판에서 치러지는 것이어서 수험생과 그 가족은 물론 온 나라 백성들의 조바심이 크다. 게다가 한동안 주춤하던 확진자의 숫자가 하루 400명대로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국민 모두가 긴장의 크기를 다스리기 쉽지 않다.

코로나19와 수능은 둘 다 피해갈 수 없고,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고난의 길이다. 다만 코로나19가 자신은 물론 나로 인해 전파될 수 있는 다른 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지극한 생태적 직접성이 있는 반면, 수능은 대학에 진학해 공부할 수 있는 실력의 정도를 가늠하는 시험이라는 표면적 이유와 간접적 사회성, 그리고 개인주의의 속성이 있다. 해마다 수능은 시험과의 인간관계 여부를 떠나 나라와 국민 전체에게 매우 중요한 통과의례가 되고 있다.

시험이라는 제도는 대체로 차별을 만들지 않고 경계의 구분지음 없이 널리 인재를 발굴한다는 역사적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능을 통해 실력에 따라 대학입학을 허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좋은 성적으로 평가되는 능력 또는 능력주의(meritocracy)를 고수하는 것은 그 방법이 공정성을 유지하고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고정관념을 오랫동안 믿어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능이 우리가 바라는 “국가는 시스템을 공정하게 만들고, 개인은 열심히 노력하여 자부심을 갖고 그 대가를 향유하게 하는 사회”(김선욱)로 위장하는 변명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너무 비약적인 생각일까. 지금의 우리는 단순히 치열하게 열심인 `개인의 노력'만으로 수능고득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으로 차별되는 소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2020학년도 신입생의 절반이 넘는 55%가 소득분위 9~10분위의 고소득 가구에 해당한다는 통계는 부(富)의 세습과 마찬가지로 실력의 세습이 견고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수능 1%의 실력을 가진 의사'를 당당한 선택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굴욕은 수능을 통해 확산되고 지속되는 모순이 고착화되는 시대를 말한다. `시험'을 통과한 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을 편 가르는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철폐이거나,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에 대한 혐오스러운 거부감 또한 `공정성'의 가면에 숨어 공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공정은 반드시 기회의 균등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리고 실력에 도취되어 오만하지 않고, 만족하지 못하는 수능 성적으로 `능력주의'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걱정 대신 `인성'을 키우고 그 `인성'으로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는 `함께'의 힘이다.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일은 개개인의 실천이지만, 그 노력에 포함된 이타성은 개인별로 시험을 치러 개인별로 성과를 지향하는 `수능'의 `능력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능력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견 불일치는 공정성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성공과 실패 또는 승리와 패배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도, 그리고 자신보다 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승리자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가도 문제”라는 화두는 당장 내일 수능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이제 우리는 (능력주의적 인재선발로 인한)유대관계의 상실로 빚어진 분노의 회오리”대신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릴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

마이클 샌델의 새 책<공정하다는 착각>(`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라는 부제가 있다)을 시험'에 올인하는 이 땅의 모든 젊음이 응답할 수 있겠는가. `10년 전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확인된 공정성에 대한 한국인의 갈증은 여전히 공정하게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우리를 고스란히 `시험'에 들게 한다.

박봉과 고용불안, 생명을 위협받는 일터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더 많은 사람들이 능력자로 대접받는 일이 당연한 세상. 그들과 함께 공정하며, 그들의 일이 존엄하게 대접받도록 만드는 일, 수능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올 수 있을까. 외우지 말고 가슴으로 풀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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