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순해지는 나이
귀가 순해지는 나이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12.0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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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크게 제 수 없이 해 본다.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고 다시 바늘귀를 향해 실을 조준한다. 또 실패다. 침으로 범벅이 된 실이 축 늘어졌다. 애꿎은 실은 무슨 죄일까. 벌써 수십 번을 꿰어보지만, 허탕이다. 바늘귀의 크기와 나이는 반비례하는 걸까. 허공을 바라봤다. 문득 사십여 년도 훌쩍 넘는 그 언제쯤을 생각해 본다.

어머니는 침을 발라 꼿꼿해진 실을 연신 바늘귀를 공략하지만 번번이 들어가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던 열 살 남짓 딸내미는 그런 엄마가 이상하게만 보였다.

“엄마, 구멍이 이렇게 큰데 이게 안 보여?”

울 밖에서 동무들이 부르는 소리에 엉덩이가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빨리 꿰매시면 좋으련만 오늘따라 굼뜬 어머니의 손이 밉기만 했다. 꼼짝없이 잡혀서, 왜 하필 이때 양말을 꿰매신다는 것인지 야속하기만 했다.

그때 생각해 낸 꾀가 바늘이란 바늘에 실을 죄다 꿰어놓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몇 번이고 확인을 시키고는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때는 양말도 옷도 왜 그리 빨리 헤지는지 어머니는 저녁마다 우리 가족 옷을 깁는 일이 다반사였다. 살림살이가 곤궁했던 시절 우리 집은 양말과 속옷, 겉옷에 주인이 따로 없었다. 다만, 어른 옷과 아이 옷만이 구별되었다. 엄마가 천을 덧대어 기워놓은 옷들은 먼저 입는 사람이 임자다. 때문에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명절은 우리에게 유일한 최고의 날이었다.

물론 지금은 양말을 기워 신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품질도 좋아졌지만, 모든 것이 풍족해 떨어지거나 헤져서 옷을 기워 입지는 않는다. 유행을 좇고, 싫증이 나서 버리거나 방치되는 옷들이 많을 뿐이다. 우리 집 옷장부터도 새로 사 놓고 입지 않은 옷들이 빼곡하다. 세월이 그리 많이 흐르지 않았는데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하지만, 최첨단 시대인 지금도 바짓단이나 단추가 떨어지면 필요한 것이 바늘과 실이다.

어느새 나도 내가 바보라 생각했던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다. 눈이 침침해서 바늘귀에 실도 혼자 힘으로는 꿰지를 못하고, 귀도 밝지를 못하다. 보는 것도 적어지고 듣는 소리도 놓치는 수가 많아지고 있다.

언젠가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따라 비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열 살 때는 세월의 시속이 10km이고 쉰 살 때는 50km이며, 백 살에는 100km라고 한다. 어린아이들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고, 노인들이 하루라도 세월을 잡고 싶어 하는 것이 그 반증이다. 지금의 내 나이의 속도는 55.9km이다. 분명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다. 하지만 요즘 종종 뒤들 돌아보게 되고 놓친 것들에 대한 미련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세월의 속도에는 어 장치가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게다.

앞으로 점점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늘귀만큼 작아져 세상의 이야기도 종종 놓치는 일이 잦아질 터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바늘귀가 작아지는 만큼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눈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요즘이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듣지 못해도 가늠할 수 있는 나이, 나도 어느새 이순의 나이가 코앞에 와 있다. 조바심을 내거나 속상해하지 않으련다. 이제 곧 귀가 순해져 모든 말들을 품어 안을 수 있는 나이가 도래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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