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이 보여요
그 마음이 보여요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0.11.3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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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낯설지 않은 시장풍경이 즐겁다. 가끔 일상이 지루하면 나는 재래시장으로 나가는 버릇이 있다. 항상 느릿한 걸음이다.

가깝게 늘어선 상점 앞을 지날 때는 고개를 돌려 안쪽까지 들여다보고는 한다.

궁금함과 함께 시간의 구애를 갖지 않아서 좋다. 이처럼 혼자만의 자유는 세상과 더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순간이 된다.

모든 풍경이 짧은 삽화처럼 흐르고 있다.

더러는 긴 소설처럼 내 가슴에 남아서 읽도록 만들기도 한다. 고단해 보여도 고단할 수 없는 곳, 항상 바삐 돌아가는 풍경 같지만 조용한 울림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 순간 내 삶을 거울에 비추어 본다. 그래서 나에게는 시장나들이가 자연스러우면서도 특별한 의미의 시간이다.

늘 그런 풍경이었던 것 같다. 좁은 좌판이나 아니면 간이탁자 서너 개 정도를 둔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이미지조차 넉넉해서다. 그곳의 낯익은 사람들, 이제는 등허리가 굽어졌지만 지나온 시간을 대변해주듯 어색함이 묻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잠재해 있는 생동감이 넘치고 있다. 최선을 다해온 듯 한 그들의 삶이 여전히 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걸까.

그날도 우연한 걸음은 이어져갔다.

시장 어귀를 돌아서 가게 문이 반쯤 열린 곳을 지날 때였다. 아마 잡화를 파는 집이었지 싶다.

소담한 국화가 담겨있는 플라스틱 화분을 보면서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화분을 내 놓은 손길이 궁금해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야 말았다. 잠시 주인이 자리를 비운 듯 했다.

흐릿한 가게의 모습이지만 알 수 없는 온기가 시장분위기를 밝히고 있었다.

소소한 풍경이 재미로 이어졌다. 화분의 주인이 남자일까, 여자일까, 나이는 어느 정도일까, 꽃을 가꾸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꽃의 정서를 느끼며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발길은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저 꽃처럼 화려하거나 우아하지는 않아도 내가 누구에게 이런 삶의 여유를 잠시나마 보여준 적이 있을까 하고 짚어 본다.

그저 아등바등 살아온 기억 밖에 없다. 조금은 빛바랜 재래시장 한 구석에서 발견한 꽃이지만 그 속에는 사람의 인정이 함께 피어나고 있었다.

더불어 온 세상 구석구석에까지 그런 마음의 꽃들이 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이제 남은 인생길을 어떻게 가야할지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수수한 꽃과 같은 마음을 지니며 살고 싶어졌다.

진정 바라는 것은 외부가 화려한 것이 아니라 속에서 우러나오는 울림이었으면 한다. 화분의 주인이 그 것을 가르쳐주는 것만 같았다.

오늘 시장에서 따뜻한 마음을 담아왔다.

내안의 작은 여유였다.

쉽게 지나칠 만큼 소소한 것이었지만 방향지시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나도 모르게 차분해진다. 삶이 꽃처럼 피어나기 위해서는 그동안 왜소했던 사랑의 부피를 늘여가도록 애써야겠다. 질과 양이 중요할뿐더러 항상 잊지 않아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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