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서사
여성의 서사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0.11.2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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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충북대학교 도서관에서 책 만세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 중에 양성평등에 관한 책을 골라 읽는 팀이 있다. 모두 여성이며 젠더(gender)와 여성주의에 관심이 높다. 고른 4권의 책 모두 내 성향과는 거리감이 있지만 한 권씩 읽다 보니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 특히 피에레트 플뢰티오가 쓴 <여왕의 변신>은 샤를 페로의 작품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다시 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전래동화엔 지은이가 있었다. 신데렐라, 백설 공주, 푸른 수염, 미녀와 야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디즈니 명작만화 시리즈물의 작가가 샤를 페로다. 책 <여왕의 변신>은 동화를 관점뿐만 아니라 판타지를 넣어 통쾌한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 전래동화는 이런 식의 줄거리가 없을까 호기심에 책장을 뒤지다 이영경 작가의 <콩숙이와 팥숙이> 그리고 이경혜 작가의 <심청이 무슨 효녀야?>를 찾았다.

이영경 작가는 <아씨방 일곱 동무>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녀가 쓰고 그린 <콩숙이와 팥숙이>는 콩쥐 팥쥐 이야기를 패러디했고, 전개 과정은 거의 비슷하지만 시대적인 배경이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를 그리고 있다. 콩쥐 팥쥐 이야기에 우렁각시와 장화홍련전을 버무려 여전히 여성끼리의 대립각을 만들고, 젊고 유능한 사또 대신 잘생긴 시장님을 등장시켜 불쌍한 콩숙이를 구해내는 것까지 과정만 더 길고 혼란스러울 뿐 결말은 같다. 책 뒤, 광고엔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전혀 아니다. 2008년에 나온 이경혜 작가의 <심청이 무슨 효녀야?>엔 전래동화를 패러디한 단편이 여럿 있다. <심청이 무슨 효녀야?>에서는 뺑덕어미가 심청이에게 믿을만한 어른이자, 어머니이자, 인생의 선배 역할을 해주고, <우렁이 엄마가 우리 엄마라면!>은 두 명의 엄마를 등장시켜 레즈비언 가족 형태(두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를 연상시키고, <알고 보면 팥쥐도 가엾어!>는 입양 가족을 보여주며 전래동화에 새로운 시도가 좋았다. 아울러 동화 속에 나타난 여성들의 관계를 다양하게 그리고 있다.

동서양 모두 남성의 서사에 비해 여성의 서사는 양적으로 밀려온 경향이 있다. 이렇게 굳이 전래동화를 패러디하며 새로운 관점을 주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며 억압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피에레트 플뢰티오 작가는 자신이 힘들었을 때 우연히 어릴 적, 읽던 동화를 다시 읽다가 여성 주인공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나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여왕의 변신>은 지금 시대 여성의 서사를 이어가는데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또한 한계는 있지만 젠더 테두리 안에서 쉽게 벗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함께 독서모임하고 있는 여성 팀은 회사 안에서 끊임없이 여성의 정체성을 꾸밈노동(화장)과 유니폼 같은 오피스 룩, 커피를 타며 확인받는다고 한다. 여성 상사는 (있어도) 없다. 그저 상사만 있을 뿐이라고 그녀들은 입을 모은다. 자신들도 그렇게 될까 두렵다고 했다. 이렇듯 역차별을 운운하는 시대에 살고있는 여성의 현실감은 여전히 냉담하다. 좀 더 단단해질 여성의 서사를 위해 뺑덕어미에게 새로운 역할을 주고, 팥쥐 엄마의 보살핌 속에 콩쥐와 팥쥐가 자라 연대의 동력이 되어 공동체를 변주하도록, 이런 이야기가 만발했으면 좋겠다. 가을이 깊어진다. 연대하고 마음을 나눌 여성 친구가 고파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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