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상상 그 자체다
자연은 상상 그 자체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0.11.2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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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나미브 사막의 딱정벌레가 안개 낀 모래 언덕을 응시하며 뒷배를 올렸을 때 다른 종들은 사막을 떠나면서 비웃었다.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골진 부분으로 이슬방울을 모아 입 쪽으로 흘려보냈을 때도 삽으로 태산을 옮기는 일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그 지루함이 생명줄을 이어가는 생존 방식으로 자리 잡을 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다만, 그곳을 지나던 순례자의 예리한 해석만 작용했을 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생태계의 피라미드도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 2019년도 돌연 지구 상에 출몰한 코로나바이러스는 여러 가지 삶의 모양을 바꿔놓았다. 마치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적나라한 생식기를 드러낸 것처럼 부끄러운 일로 느껴지고 사람을 대할 때도 웃는 건지 화난 건지 표정 살피기가 어려워 종종 오해도 발생한다. 나미브 사막의 딱정벌레처럼 요원한 길이지만, 모두가 생존을 위해 묵묵히 수행 중이다.

사람과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다 보니 요즘 산림에서 머무는 시간도 점점 는다. 아파트보다 전원주택을 선호하는 층이 많아지는 것도 아마 코로나 시대를 겪은 그 스트레스 후유증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이 혹 흐르는 계곡에 침이라도 뱉으면 물의 육각수 형태가 깨질 정도로 그 침엔 독이 가득하다고 한다. 그러니 그 몸속에 흐르는 혈액의 상태를 묻는 것은 우문이다.

학문도 과학 문명 쪽에서 자연 산림 생태학 쪽으로 이동하는 추세이다. 생태계의 생물적 구성원인 동물, 식물, 미생물, 바이러스는 서로 먹이사슬과 공생, 기생 관계를 이루며 조직화한다. 동물 우위에서 인간 중심으로 피라미드 화한 공식구조가 재고되는 시점에 생물학적 요소와 물리적 요소의 역동 관계를 분석하면서 다양한 시스템의 산림 생태학이 급부상 중이다.

며칠 전 성인 숲 놀이터를 구상하는 더 팜 대표로부터 요시후미 미야자키가 지은 `숲에서 몸과 마음의 평화를 찾다'라는 부제의 『삼림욕』 한 권을 선물 받아 읽고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전 세계 인류가 휘청거리는 순간, 인간 중심의 절대주의가 만들어낸 고등동물 공식은 이미 무너진 상태지만 작가가 제시한 한 문장이 여운을 남긴다. 그는 실험을 통해 도심에서 일반 공기를 흡입했을 때보다 장미 향 같은 꽃향기를 맡았을 때 전두엽 활동이 감소하면서 스트레스 수준이 낮아지는 것을 증명했다.

인간들이 점점 대지로부터 탯줄을 끊고 문명으로만 향했던 길목엔 레트카펫만 펼쳐져 있진 않았다. 인간 중심에서 해석한 가치체계가 흔들리면서 생태계의 도식도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산림 생태학의 방향은 절대주의 공식을 무너뜨리고 자연과 공생하고자 하는 과학적 접근방식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재고했고 재편했다.

나미브 사막의 딱정벌레가 사막의 안개를 맞서 생존을 이어갔듯 우리도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는 길에 자연을 상상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영국 출신의 삽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rake)는 존 밀턴의 『실낙원』 삽화로 유명한 화가이다. 그의 시선처럼 자연에 폭력을 가하지 않고 그대로 보는 일이 우리 스스로 잃어버린 실낙원을 회복하는 일이다.

`누군가 나무를 보고 감동하여 기쁨을 흘리지만 같은 나무를 그저 길에 서 있는 녹색 물체로만 보는 사람도 있다. 자연을 조롱의 대상이자 흉측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자연을 보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상상력을 가진 사람의 눈에 자연은 상상 그 자체다.'

-윌리엄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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