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
  • 김도연 충북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 승인 2020.11.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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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도연 충북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김도연 충북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친일파. 우리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듣게 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단어를 접하게 되었을 때 느낌은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 친일파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역사로 인해 등장한 사람들로 만약 우리가 국권을 잃지 않았다면 등장하지 않았을 사람들이기도 하다. 또한 누군가를 독립운동가의 삶이냐 기득권을 가진 친일파로서의 삶이냐의 선택에 기로에 세운다면 선뜻 움직이지 못할 지도 모른다. 친일파의 삶은 달콤하고 독립운동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으로 친일파에 대한 역사의 평가를 뒤바꿀 수는 없다. 제대로 된 역사의 평가가 이루어져야 우리의 역사가 점차 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친일파의 청산은 갑작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국회인 제헌 국회는 제헌 헌법에 따라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만들고 반민 특위를 구성했다. 하지만 반민 특위는 1년 못되어 해산하면서 친일파의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반세기 가량이 지난 2000년대 다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역사 바로 세우기가 다시금 시작되었고,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2009년 4,776명의 친일인물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이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아마 많은 분들이 뉴스를 통해 접했을 것이지만 2000년대 이후 친일재산의 환수가 이루어졌고, 『친일인명사전』을 통해 알려진 인물과 관련된 동상을 철거하거나 단죄문을 세우는 등 활동이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예로 충청북도에서는 3·1공원에 설치되었던 정춘수의 동상이 그의 친일행적으로 인해 1996년 철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친일파의 청산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재산 환수와 관련하여 후손과 소송전이 벌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고, 친일인물 관련 시설도 사유재산의 문제, 명예훼손 문제 등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친일파의 청산을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아쉬운 부분도 있다. 우선 친일인물 단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일제 식민통치의 실체를 파악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선 지역 곳곳에는 일제의 수탈에 앞장섰던 여러 통치기구가 있었지만 그 위치나 사진 자료 등의 알려진 곳은 드물다. 또한 우리의 정신을 침탈했던 신사 등이 전국적으로 세워졌고, 여전히 그 잔재물이 남아있는 곳도 있지만 이에 대한 내용도 일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일제에 의해 훼손되거나 반출된 문화재도 다수이고, 일본식 지명으로 인해 우리의 고유 지명이 훼손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일제의 수탈로 인해 피해받은 사람들도 많은데 이러한 사람들의 기억을 기록화하는 것도 시급하다.

아픈 역사라고 해서 무조건 지우는 것은 좋은 방향이 아니다. 과거 임진왜란 이후 유성룡이 저술한 징비록 역시 전쟁의 아픈 역사를 통해 여러 실책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고자 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일제강점기라는 우리의 아픈 역사도 보기에 따라 우리나라가 더욱 발전하는 하나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충청북도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추어 친일 잔재에 대한 기초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충청북도의회에서는 관련 조례안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앞으로도 친일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함께 나아가 식민통치의 역사를 상세히 들여다보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일제의 부정적인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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