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질문과 시민들의 바람
코로나의 질문과 시민들의 바람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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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쁘고 즐거운 때보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을 더 많이 만난다. 그때마다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바로 소소한 일상이다.

크고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하루하루 마주하는 작은 것들, 그러니까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노을의 빛깔에서, 눈 내리는 밤의 풍경에서, 활짝 핀 꽃과 차 끓는 소리에서, 삶의 고단함을 달래는 따스한 온기를 느낀다.” 작가 한정주는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의 소품문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와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를 엮고 옮긴 책 <문장의 온도> 서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번 주 <수요단상> `코로나의 질문과 시민들의 바람(에 청주시가 답합니다.)'에는 2021년도 청주시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한범덕 청주시장의 시정연설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지난 20일 제59회 청주시의회 2020년도 제2차 정례회의에서 발표된 시정연설을 어렵사리 구해 읽었다. 60쪽 분량의 시정연설문을 읽으며 2년 전에 읽은 책 <문장의 온도>가 떠오른 건 까닭이 있다.

시정연설의 간추린 내용은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 아쉽게도 청주시 홈페이지에는 <수요단상>을 쓰는 지금까지 시정연설의 전문이 게재되지 않았다. 물론 청주시의회 홈페이지도 찾아보았으나 시간만 낭비했다.

내가 `2021년도 청주시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을 주목하는 첫 번째 이유는 “얼마 전 미국 국민들은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대신 국제적 연대와 다자주의를 표방하는 바이든을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택했습니다.”는 대목이다.

청주시민으로 살아오면서 지금까지의 나는 청주시정에 국제정서를 언급하는 경우를 찾지 못했다. 내가 발견을 못했던 것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실제로 감응하는, 즉 실감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과 다름없다. 코로나19가 인류의 보편적 재앙으로 확대되고, 외국의 곤경이 우리에게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현상을 감안하더라도 도시가 국제적인 감각과 관점을 상기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지방도시가 세계와 직접 통하는 청주시의 R2G(Regional To Global)전략의 수립과 실천을 기대해도 되겠다.

“우리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의 대가를 알차게 쓰도록 위탁받았습니다. 그 땀의 가치를 매우 잘 알기에 1원도 허투루 쓸 수 없습니다.”라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우리는 여전히 `근로'와 `노동'의 경계에서 노동의 가치를 폄훼하는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확히 50년 전 스스로 몸을 불태웠던 전태일 열사의 외침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으며, 그러므로 `노동'대신 `근로'를 공식적 언어로 사용하는 시대와 체제에서 살고 있다. 고용주에 종속되는 개념인 `부지런히 일하다'의 `근로'대신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노동자의 능동적 활동을 뜻하는 `노동'이라는 낱말이 쓰인 시정연설은 충분한 혁신이다.

시정연설을 통해 2021년 청주시는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지키는, 행정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디지털 시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의 가치를 지키는 ◆자연과 조화로운 상생으로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는 ◆소외된 이웃이 한 사람도 없도록 포용의 가치를 잊지 않는 ◆지방화 시대를 선도할 수 있게 청주색을 분명하게 해줄 5가지의 재정 목표를 분명히 했다. 시정연설의 문장은 담대하지 않으나 결연하며, 거창하고 화려하지 않으나 소박한 가운데 위로가 있다.

4년 전 `주권재민'을 함성으로 외쳤던 촛불혁명처럼 11월 시정연설의 약속과 약속들을 꼼꼼히 읽어보길 권한다.

그 약속을 제대로 알고 잘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든든한 힘이고 시작이다. “삶에 회의가 일어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도/ 찬바람이 겨드랑이 께를 파고들면/ `그래 살아보자'하고 입술을 베어 물게 하는 달”<정채봉. 11월에>처럼 문장의 온도로 따뜻해지는 세상. 낯선 일상에서 먼저 준비하는 도시와 시민에게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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