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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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0.11.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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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장 (진천 주재)
공진희 부장 (진천 주재)

 

`이거 딱 한 입만 먹어봐. 너한테만 주는 거다'

바나나 구경하기가 어려웠던 시절, 친구가 외할아버지 회갑연 상차림에 올라온 바나나 한 가닥을 얻어 와 자랑을 하며 내게 특별한 우정을 확인해 주었다.

그 시절 살림살이가 제법 넉넉했던 친구의 외할아버지는 방 안이 아니라 마당에 회갑연 상을 차렸다.

그 상에 올라온 품목 중에 내 눈길을 끈 것은 단연 바나나였다.

100가구 가까운 고향마을에서 TV를 보유한 집이 4~5가구에 불과하던 그 시절, 꼬맹이 열 대여섯 명이 빼곡하게 들어찬 방 안 TV에서는 팬티만 걸친 타잔이 목놓아 괴성을 지르며 동물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타잔 가족 중에 가장 인기를 끈 것은 원숭이 치타였다. 그 치타가 아무 때고 맛있게 먹던 음식이 바로 바나나. 해외여행이 많은 제약을 받고 외국과의 교역규모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던 그 시절에 바나나는 TV에서나 구경하던 귀한 과일이었다.

손으로도 쉽게 벗겨지는 도톰한 껍질. 사과나 배와 달리 물컹거리던 육즙. 달지도, 쓰지도, 시지도 않고 또는 이 모든 맛이 조금씩 섞여 있거나 차라리 담백에 가까운 식감.

바나나와의 첫 만남은 이렇듯 다소 당황스러웠다.

바나나는 칼로리가 가장 높고 당질이 많은 알칼리성 식품으로 칼륨, 카로틴,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다.

바나나잎은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저하시켜 비만을 예방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에도 효과가 있으며 장내 유익균을 증식시켜 대장암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바나나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최근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가 `바나나 불치병', `바나나 암'이라고 불리는 `변종 파나마병(TR4)'이 중동과 아프리카의 바나나 농장으로 급격히 퍼져가고 있다고 발표했다.

`TR4는 바나나 풀의 뿌리가 곰팡이에 감염돼 서서히 말라죽는 병으로 보통 2~3년이면 거대한 농장 전체를 고사 상태로 만든다.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대부분 `캐번디시' 한 가지 품종뿐이다. 씨를 뿌려서 재배하는 게 아니라 우수한 품질을 가진 바나나 풀의 뿌리나 줄기를 접붙여서 번식시켰기 때문에 유전자가 극도로 단순해졌다. 캐번디시 이전에는 `그로미셜'이라는 한 종류가 바나나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파나마 병이 창궐해 멸종됐다. 농장들은 다행히 파나마 병에 잘 견디는 캐번디시라는 품종을 개발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캐번디시에 치명적인 TR4가 빠르게 확산하기 시작해 제2의 그로미셜 사태, 즉 바나나가 멸종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린 거다'(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1847년에는 `아일랜드 대기근'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아일랜드인들은 거의 동일한 유전자를 보유한 감자만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감자 마름병의 원인이 되는 박테리아가 출현해 모든 감자가 죽었다.

그러자 감자가 주식이던 아일랜드 전체 인구 800여만명 가운데 200여만명이 사망하고 200여만명은 먹을 것을 찾아 해외로 이주했다. 영국의 착취와 외면, 억압에 더해 유전자 다양성을 무시한 인재(人災)로 유명한 사건이다.

뛰어난 품질의 동식물을 대량생산하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점점 유전자군이 단순화되어 생물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

기업적 식량생산 시스템이 자연의 역습을 불러 일으키며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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