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 근본주의자 정호의 기개가 스며있는 괴산 반계정(攀桂亭)
주자학 근본주의자 정호의 기개가 스며있는 괴산 반계정(攀桂亭)
  • 김형래 강동대 교수
  • 승인 2020.11.2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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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괴산 반계정 전경.
괴산 반계정 전경.

 

예나 지금이나 영남지역과 서울을 이어주는 길은 반드시 소백산맥을 넘어 충북을 지나가게 마련이다. 삼국이 우호적인 관계에서 문화를 교류하였을 때나 혹은 각축을 벌이던 때를 막론하고 천험의 소백산맥을 넘어야 했으며, 삼국통일 이후 고려·조선시대에도 서울지역에 왕래하고 문물을 유통하기 위해서는 소백산맥을 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교통로로서 뚫린 옛 길 가운데 문경에서 연풍이나 괴산·충주로 통하는 길은 삼국시대 이후 대략 고려시대까지는 계립령이 주로 이용되다가 조선시대에는 조령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지금은 이화령으로 국도가 개통되어 있어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문경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이화령을 넘으면 만나는 첫 고을이 연풍면이다. 이곳은 1394년(태조 3) 장연현과 장풍현을 합하여 장풍현(長豊縣)이라 하고 감무를 두었다가, 1403년(태종 3)에 연풍현으로 고치고, 1413년에 현감을 두었다.

지금은 이화령 아래에 터널이 뚫리고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나아졌지만 백두대간에 맞닿아 있는 연풍면은 얼마 전까지도 오지 중의 오지였다.

반계정(攀桂亭)은 연풍면소재지에서 괴산~연풍간 구 34번 국도를 따라 약 5km정도 가다보면 좌측으로 입석마을 초입(初入)의 커다란 반석 위에 동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앞으로는 쌍천(雙川)이 흐르고, 천 너머로는 들판과 산이 펼쳐져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한 편이다. 이 정자는 여지도서, 1872년 제작된 연풍현 지도 등에도 `장암정(丈岩亭)' 이라고 정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반계정(攀桂亭)이 위치하고 있는 적석리 입석마을은 400년 전 조선 숙종 때 연일(延日) 정(鄭)씨의 선조가 정착하면서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입석마을은 경상도에서 이화령이나 새재를 넘어 괴산,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어 옛 선비들이 쉬어 가던 애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반계정(攀桂亭)은 장암(丈岩) 정호(鄭澔, 1648~1736)가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인현왕후가 폐출되고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사사 당하자, 파직된 후 낙향하여 지은 정자이다. 정호(鄭澔)는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의 현손이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제자로 1684년 문과에 급제한 뒤 도승지, 대사헌,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반계정(攀桂亭)은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朱熹, 1130~1200)의 「초은사(招隱詞)」에 나오는 “계수나무 가지 부여잡고서 오래 머무노라(攀援桂技聊淹留)”라는 문구 중에서 유래하였으며, 현판은 동문수학했던 친구인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 1641~1721)가 썼다. .

현재의 정자는 한국전쟁 때 병화(兵火)에 의해 소실되었던 것을 1971년에 재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자는 자연석 암반 위에 세워졌는데, 남쪽부터 1칸의 마루, 2칸의 방으로 구성하고 전면에 툇마루를 두었다. 남쪽의 마루는 높게 설치하여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 전면과 측면에 난간을 돌렸다.

김형래 강동대 교수
김형래 강동대 교수

 

정호(鄭澔)는 숙종에서 영조 초반에 이르는 정치적 격변기에 여러 차례에 걸쳐 해직과 복직, 파면과 재 복직, 유배와 해배 등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스승인 우암의 사상과 이념, 지향점을 완성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영의정까지 역임하는 등 최고의 관료생활과 노론의 선봉으로 활약하였으나 마음이 곧고 깨끗하며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는 청백리(淸白吏)로서 후학과 후손들에게 귀감이 된 인물이다.

반계정(攀桂亭)은 당시 문화와 정계를 이끌어가던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와 노래를 함께했던 시문학의 산실이요, 정호선생의 정신이 스며있는 유서 깊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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