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난로와 희망
벽난로와 희망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20.11.2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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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청년 시절 즐겨보던 주말의 명화에 등장하는 벽난로는 낭만 그 자체다. 잘생긴 남자 배우가 도끼로 장작을 패고 난로에 불을 지핀다. 담요를 두른 흔들의자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벽난로 앞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다. 벽난로와 커피는 나에게 낭만의 상징이다. 아버지가 살던 고향 집을 수리하면서 안젤라와 한 첫 계획은 벽난로 설치였다.
집을 수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돈은 물론이며 원하는 가구와 자재를 고르는 일도 큰 노력이 필요하다. 남다른 안목을 지닌 안젤라는 원하는 것들을 찾기 위해 3년이 넘는 시간 발품을 팔았다. 집 박람회, 오래된 가구점, 조명, 전기, 농원, 도배, 장판 등 많은 곳을 방문했다. 평소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 맺기를 잘한 덕분에 전문가들을 소개받고 조언도 받았다. 가장 힘든 것이 원하는 벽난로를 찾는 것이었다. 작으면서도 집안 분위기에 맞고 화력 좋은 벽난로는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충주분을 소개받아 가계를 찾았는데 아 ~ 거기에 그토록 찾던 우리 집 벽난로가 있었다. 작고 단순하여 집 분위기와 잘 어울리고 화력도 좋다고 하니 안성맞춤이었다. 집수리와 함께 지붕에 구멍을 내고 벽난로를 설치하였다. 정말 멋진 벽난로가 우리 집 지킴이가 된 것이다.
공사를 마치고 이사했다. 힘들고 바쁜 정리 시간을 보내고 참나무를 주문했다. 보통은 원하는 크기로 자른 참나무를 주문하지만 나는 자르지 않은 참나무를 주문했다. 공구점에 들려 전기톱과 도끼도 샀다. 꿈을 이룰 시간이 된 것이다. 전기톱으로 30cm 정도로 나무를 자르고 차곡차곡 쌓아 말렸다. 초보인 내가 하기에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 무려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더운 여름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나무를 바싹 말려 주었다. 11월에 되자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 벽난로를 피워야 했다. 마른 나무를 도끼질하여 4등분 하였다. 팬 장작을 집안으로 한 아름 옮기고 벽난로 시험 운전을 하였다.
쉬울 것 같던 불붙이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몇 번을 실패한 후에야 방법을 터득했다. 신문지를 접어 벽난로 안에 넣고 위에 양초 조각을 올려놓는다. 도끼질할 때 떨어진 나무 부스러기들을 주워 그 위에 올리고 작은 장작을 바람이 잘 통하게 쌓는다. 신문지에 불을 붙여 나무 부스러기들을 먼저 태운다. 그러면 불이 작은 장작으로 옮겨 간다. 작은 장작의 열기가 벽난로 안의 온도를 높이고 난 후에 큰 나무에 불이 붙는다. 불이 제대로 붙자 냉랭하던 집 안이 따뜻해진다. 안젤라와 커피를 들고 흔들의자에 앉았다.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음악을 듣고 고구마도 구워 먹고 벽난로 앞은 우리 집의 가장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잠자는 시간이다. 나무를 시간에 맞게 넣어야 불이 꺼지지 않는다. 한번은 중간에 일어나야 하는 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장작을 가득 넣고 바람구멍을 가장 작게 했다. 아침이 되니 장작은 모두 재가되고 아주 작은 불씨만 남았다. 그러나 그 위에 장작을 올리고 바람구멍을 열면 다시 불이 붙는다. 작은 불씨의 힘은 정말로 엄청나고 끈질기다. 아주 조그만 불씨만 있어도 언제든 벽난로의 불은 붙는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큰 희망 이루기를 원한다면 먼저 작은 희망을 성취해야 한다.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작은 희망을 만들고 성취의 기쁨으로 조금 더 큰 희망에 도전해야 한다. 일상의 작은 행복과 희망이 큰 행복과 희망의 불씨가 된다. 역경이 닥치더라도 작은 희망의 불씨만 꺼트리지 않는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작은 행복과 희망의 위대함을 알려준 벽난로 앞에 앉게 된 덕분에 안젤라와의 사랑은 더 깊어지고 추운 겨울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벽난로는 우리 집 희망과 행복의 지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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