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0.11.1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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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모처럼 개울물길 따라 산책을 했다. 한 길을 넘는 키의 갈대밭. 아니 억새인지도 모른다. 갈대와 억새는 모양새가 비슷하여 아직 확실히 구분을 못 한다. 그저 꽃처럼 핀 머리 수술이 흰 것은 억새이고 갈색이면 갈대라는 정도의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저것들을 갈대라고 생각하고 싶다. 개울엔 습기가 많다. 물가에 많이 자란다니 갈대가 아닐까. 반대로 하천 둑에 듬성듬성 군락을 이룬 것이야말로 억새 같다. 키가 좀 작고 잎도 억세니 억새가 분명한 듯싶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마른 잎이 부딪히는 소란스런 소리가 빗소리 같다. 한여름 왕성했던 대에 물이 내리고, 천천히 마르고 나면 비록 굵기는 그만 못하지만, 대나무만큼이나 딱딱해진다. 갈대나 억새는 꽃이 피지 않는다. 꽃이 피지 않으나 꽃 대신 씨앗이 맺는 곳에 꽃술이 꽃처럼 피어서 아무도 꽃피우지 않는 계절 동안 도도하게 핀다. 쓸쓸해 보이지만 또 다른 의미로 독야백백하는 자태.

물가 둔덕진 곳이 있다. 예전엔 고수부지라는 어려운 한자어의 둔치다. 잠시 둔치의 바위에 걸터앉아 시조 한 수 읊어본다.

개울가 언덕에서 손짓하는 저 여인/다기서면 손 사래질 돌아서도 손 사래질/저 손짓 오라는 손짓인지 가라는 손짓인지.//향기 없는 얼굴로도 꽃처럼 살고파서/잔잔한 바람에도 나부끼는 화냥끼/春夏秋 버텨온 시간만큼 누리고픈 저 아련함이여.

한금령. 한강의 최상류이고 금강의 최상류다. 전엔 살구나무가 많았었는지 살구杏 언덕峙 행치고개라고 했는데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태어난 마을로 유명하다. 두 빗방울이 떨어지다 고개 넘어 쪽이면 금강으로 가고 이쪽으로 떨어지면 한강으로 흘러가는데 이 좁은 개울에 뭔 물이 그리 많이 흘러간다고 이명박 정권 때 4대강 사업으로 튼실하기 그지없는 하천둑을 조성해 놓았다.

왜 아닐까. 전엔 웅덩이도 있고 잔돌 큰 돌들이 있어 고기들이 모여 살았다. 어렸을 때 여름이면 발가벗고 멱 감으며 물고기를 잡았었던 곳이다. 4대강 사업 후 깨끗해지긴 했으나 물이 고이지 않고 금세 쪽 흘러버려 지금은 물놀이는 물론 못하고 고기들이 살지 못해 아쉬움 이 크다. 개울이 개울다워야 운치도 있고 제 맛이 나는 데 삭막한 느낌마저 주어 개울이라는 말뿐이지 초라한 개울이다.

개울다운 개울은 한참을 더 내려와서야 만날 수 있다. 음성천과 하당천이 만나는 합수머리에 와서야 제대로 된 물길이 형성된다. 그만큼 음성천에서 내려오는 물량이 많다는 이야기다. 합수머리에는 백사장도 있고 자갈밭도 있다. 물이 흐르지 않는 넓은 습지에는 커다란 갈대밭이 형성되어 있고 청둥오리와 백로가 서식하기에 좋은 여건이 마련되어서 수백 마리의 새떼들이 자맥질하며 한가로이 먹이를 찾고 있다. 인기척이 들리자 동시다발적으로 물을 박차고 하늘로 오르는 모습은 과히 장관이다.

우리에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란 말은 꽤 익숙하다. 이 말은 1597년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에게 이 말을 강조했고, 1945년 이승만 대통령이 환국(還國) 환영회에 운집한 5만 군중 앞에서 대동단결을 강조하며 한 말로 유명하다. 단생산사(團生散死). 본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장자(莊子)'가 한 말이다.

올해는 코로나 19사태로 사정이 달라졌다.

오죽하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는 말로 변해서 세간에 풍자되고 있을 정도다.

하당천과 음성천의 물량은 별것 아니지만 두 개울이 만난 합수머리부터는 과히 샛강이라 불릴 만큼 넉넉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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